에세이 한 편

칭병(稱病)의 수행처 해산토굴/ 한승원

검지 정숙자 2020. 6. 3. 14:41

 

 

    칭병稱病의 수행처 해산토굴

 

     한승원 / 시인, 소설가

 

 

  해산토굴海山土窟에 오신 한 스님이 "와! 선생님은 날마다 해산을 하시는 모양이군요."라고 말했다. 스님이 해산海山을 해산解産으로 오독悟讀한 것에 대해 나는 허허, 웃었다.

  '해산'은 내 호이고, 토굴은 내 집을 이른 말이다. 털털하게 지은 뱃집 한옥에 주황색 기와지붕을 얹었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고,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도깨비 한 놈을 옆에 끼고 산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와 닮은 그놈과의 교감 때문에 나는 나의 찬란한 해산을 위하여 수시로 잉태를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unbermensch)를 가르치노라' 라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위버멘쉬를 일본 번역자들은 '초인超人'이라고 번역했지만, 우리 번역자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젊은 시절에 초인이라고 번역된 책을 읽은 바 있다. 니체는 반역사적인 퇴행의 길을 가고 있는 오늘날의 인간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제시했는데, 그 인간의 유형이 위버멘쉬인 것인데, 우리말로는 마땅하게 번역할 말이 없다고 한다.

  2,500여 년 전, 칭병한 채 석가모니의 제자들을 불러들이고 '불이不二'와 '불가사의 해탈'을 설파한 인도 가비라성의 유마도 자기 혼자서만 아는 어떤 도깨비하고 함께 살지 않았을까? 그 도깨비의 간섭에 따라 칭병하고 살지 않았을까?

 

  그 도깨비와 더불어 산 이래 나는 그놈의 감각으로 느끼고, 그놈의 머리로 사유하고 명상한다. 그놈 때문에 나의 삶은 바뀌었다. 서울에서 보대끼며 살다가 낙향하여 토굴을 마련하고 집들이를 한 첫날밤에 자기 혼자만 아는 어떤 시공인가를 휭 다녀온 나의 도깨비가 "야, 우리 거래를 하자.'고 말했다.

  "무슨 거래를 하자는 것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놈이 말했다.

  "파우스트도 말년에 악마하고 거래를 했지 않으냐? 죽은 다음에 영혼을 악마에게 주기로 하고, 젊음을 새로이 받는······. 너도 파우스트 영감처럼 우리 도깨비나라의 은행에 내 영혼을 저당하고, 네 머리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대출하여서 토굴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든 것, 그 너머로 가로지른 육지, 떠오르는 달과 해, 가을 풀밭의 들꽃 같은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 바다에 끼는 안개, 흐르는 구름, 바람, 초혼된 넋처럼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 물새들, 고기들, 농토를 일구고 사는 농부들, 바다의 어부들, 검은댕기두루미,  해오라기, 먹황새, 도요새, 물떼새, 갈대밭에 둥지를 틀고 사는 개개비, 앞산 뒷산에 사는 꿩, 밤에 우는 부엉이······. 그것들을 다 사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며 살아라······. 물론 네가 죽은 다음에는 우리 도깨비나라로 네 영혼을 수습해 간다는 조건이다."

   그놈의 뜬금없는 제안이 맘에 들어 "그래 좋다."하고 말했는데, 그놈이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무슨 조건이냐?"고 묻자 그놈은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에도 한눈팔지 않고, 이 토굴 안에 깊이 너를 가둔 채 이때껏 읽지 못한 책을 읽어내고 시를 쓰는 일에 팍 미쳐버려겠다는 조건이다."고 말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내가 흔쾌히 그 조건대로 하겠다고 했으므로 흥정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그놈이 가져다 준 돈으로 토굴에서 보이는 남해바다 주변의 우주를 사버렸고, 나는 일약 득량만 바다 일대의 우주 주인이 되었다.

  우주의 주인은 섭동攝動의 삶을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야 한다. 섭동은, 천체 속에서 사는 별들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간섭)을 받는 것을 말하는 천문학 용어이다.  

  박새가 날아와서 나목이 되어 있는 공작단풍나무의 가는 가지에 앉아 나와 눈을 맞추며 비이 하고 울고 나서, 그 가지를 걷어차고 창공으로 날아간 다음 그 가지의 미세한 흔들림에 내가 어질어질 흔들린다.

  음악을 틀어놓고 도깨비와 춤을 추다가 바다로 나가는데, 한 노인이 "등산 가시는가?"하고 묻는다. 이 노인은 '산책'이라는 말과 '등산'이라는 말을 구별 못하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는데, 파도 앞에 선 채 문득 생각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있는 산이 '해산'이고 나는 날마다 한 차례씩 그 산을 오르므로, <등산 가시는가?>하고 말한 그 노인은 나의 삶을 뚫어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토굴에 나를 가두고 늙어가면서 터득한 지혜가 유마거사처럼 칭병하고 사는 것이다. 추사 선생도 늙바탕에 들어 유마처럼 살았으므로, 그의 벗들은 그를 '조선의 유마'라고 불렀다.

  그런데 유마는 방을 텅 비우고 문병객들을 맞았다는데, 나는 지저분한 책이나 생활 용품들을 방 여기저기에 늘어놓고 쌓아놓고 산다. 버리지 못하는 집착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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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와문학』 2020-여름호 <내 마음의 도량 2> 에서

  * 한승원/ 시인, 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사람의 맨발』 등,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해산 가는 길』 등, 김동리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