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격차와 창작능력을 위하여
김관식/ 시인, 문학평론가
문화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비교 기준의 설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교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라 간의 문화는 절대문화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 안 집단 간에서도 문화수준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고, 도시와 농촌, 강남과 강북 등 지역 간에도 문화수준의 차이가 발생한다.
하물며 개인 간에도 개인의 생활수준과 빈부의 차이, 사는 곳, 결혼 유무, 교우관계, 학력수준, 남녀노소, 종교나 취미 등의 유무 등에 따라 문화수준의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격언이 있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사귀는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문학인구가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많은 편이다. 서구의 생활문화가 춤과 노래를 생활화하여 즐기듯이 한때 유행처럼 노래방 문화가 이어지더니 시들해지고, 낭송시를 즐기는 문화가 문학인의 문화로 자리 잡는 이상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문학인이 많다는 것은 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문학인이 많다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고 겉치레만 요란한 행사위주의 과시형 문화로 자리 잡아 문제인 것이다.
문학인이 작품을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여 창작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좀 더 나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텐데,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보다는 많은 작품을 창작하면 좋은 작품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무조건 다작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고서는 아무리 다작을 하더라도그 수준의 작품만 창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부하지 않는 문학인은 발전이 없는 것이다. 다작은 안목을 키우는 공부와 같이 이루어져야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최근 문예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등단제도를 두어 자격미달의 시인을 대거 양산하고 문학단체는 이들을 회원으로 무조건 받아들인 결과 한국문학인 단체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문학활동으로 요란하다. 문학인이면 만족해야 할 것을 문학단체의 화려한 조직적인 감투명함을 내밀고 자신의 위상을 돋보이려는 헛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문학작품은 혼자만의 작업이다. 그런데도 문학단체 활동만 치중하는 것은 본질과 거리가 먼 활동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다. 자기보다 월등한 문학인에게 작품창작의 비법을 배울 수 있는 목적으로 문학단체가 기능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와는 상반된 동호인들과의 친목도모를 위한 단체로 변질되어 작품창작과는 관계없는 시간을 허비하고 엉터리 작품으로 칭찬받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속물적인 문화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문학작품은 생활의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인격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꾸준한 자기 수양과 진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본질을 떠난 문학은 거짓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하는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필두로 세계적인 영화상을 많이 받고 최근에는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것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인들도 현재 자신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작품을 창작한 작가 자신이 자신의 수준을 잘 안다. 능력이 모자라면 감추려고 하지 말고 문학이론 서적을 읽고 우수한 작품을 많이 읽어 안목을 기르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작품을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샤람은 벽에 부딪치면 자신의 능력을 쉽게 포기해버린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는 자만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 명작을 창작할 수 있는 법이다. 올해는 자신을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안목 기르기에도 도전해보시기 바란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의 능력은 얼마든지 자신이 가꾸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문화가 없듯이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다. 문학작품의 창작도 상대적인 문화인만큼 자신에게 충실하고 진실했을 때 좋은 작품을 쓸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 중 절실한 문제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취사선택하여 공감이 갈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이 글을 읽은 모든 문학인들이 만족할 만한 좋은 작품을 창작하여 창작의 기쁨을 만끽하시기 바랄 뿐이다.
* 『가온문학』2020-봄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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