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서퍼/ 한경용

검지 정숙자 2020. 2. 27. 14:07



    서퍼


    한경용



  장생포 앞바다나 김녕리 청굴로 나가보면

  흔들리는 것 또한 고래들뿐이 아니란 걸 안다

  고래의 생존법에는 곡선으로 미끄러지는

  율동선이 있다고 한다

  절벽 아래 파도를 보며 하강하는 것 또한 새들뿐이 아니란 걸 안다


  그간 얼음 등대 밖에 있어서

  저 봄이 나를 미치게 하였지

  는개가 낀 날

  오랫동안 목까지 밀려온 밀물

  죄를 짓고 멈춰 독방 수감이 된 시계를

  궤짝 속에 가두어 놓고 불량 죄수가 되어

  직사각형 침실에 놀러 온 햇살을 보고

  철조망 이래 달도 별도 탈출을 꿈꾸었지


  물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을 때

  좋은 파도가 오면 그것처럼 참기 힘든 일이 없어

  스리랑카나 발리

  뉴질랜드의 와이마마쿠 스왓에서

  갑지가 출몰한 돌고래 떼를 만난 적도 있어

  우리는 그 돌고래 떼와 함께 춤을 추었지

  라인업에 나가서 해변의 절벽을 보면

  머언 바다에서 밀어주는 당신의 힘

  파도가 깨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운이 좋다면 말이야

  태풍의 영향을 받은 멋진 파도가 올 수가 있어

  이번 주 차트 상엔 금요일 정오

  파도 터널을 지나면 다시 한 번 폭풍 속으로

  수염고래여, 프런트 사이드 360-4˚를 보여 줄까


  이곳, 검문소 높은 담 검은 망루

  푸른 고독이 누룩이 될 때까지

    -전문-


   * 공중에 뛰어 횡으로 360도 회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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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한경용/ 2010년 『시에』로 등단, 시집『빈센트를 위한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