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꽃샘추위/ 이대의

검지 정숙자 2020. 2. 27. 13:35



    꽃샘추위


    이대의



  며칠만 있으면 꽃이 피겠다


  어머니는 바람이 차다고 하면서도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보고 있다


  그날, 서울로 취직하러 간다는 작은형을 두고

  일 나가셨던 어머니

  작은형에게 한 끼라도 더 해 먹이고 싶어

  일하던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되돌아오는 길


  청보리밭 언덕 한가운데

  작은형이 밭매다가 꼽아놓고 간 호미


  어머니는 아직도 그 호미를 뽑지 못하고 그 청보리밭 두렁에 앉아 계신 것이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보다

  더 나이 든 작은형은 잘살고 있는데도

  그 가난한 설움을 버리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계신 어머니


  어머니! 바람이 차요

  찬바람에 감기 걸려요


  문 닫으시라 해도 어머니는 봄빛이 좋다고 눈부시게 밖을 바라본다

  꽃바람이 차갑게 스며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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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이대의/ 1997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서울엔 별이 땅에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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