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달의 물살/ 김명철

검지 정숙자 2020. 2. 27. 13:44



    달의 물살


    김명철



  사그라진 당신의 눈빛을 그대로 두고 떠나왔다

  겁의 시간처럼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그때의 그 달빛과 그 바위섬을 다시 찾아와

  해안도로 아래 출렁이는 커다란 물거품들을 본다


  달빛 아래

  밀물에 반쯤 잠긴 바위섬을 배경으로 마주 서서

  남자의 두 어깨를 흔들고 있는 사람

  힘없이 흔들리는 남자


  사체들의 잔해가

  뼛가루와 마른 살가죽의 비늘과 오만한 이해들이

  둥둥, 물거품을 타고 반짝인다


  달의 인력을 거슬러

  한 무리의 철새 떼가 동쪽으로 날아가고


  달의 표면에서 일렁이는 폐수廢水의 물거품

  무너진 달의 물살에 흔들리는 나


  비릿한 천 개의 물거품에

  천 년의 천 년을 더한 두께의 검붉은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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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김명철/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짧게, 카운터펀치』『바람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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