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사과농장
한혜영
거짓말이라는 매우 나쁜 전염병이 한바탕 농장을 휩쓸고 갔다 농장주인은 뼈대가 드러나고 등이 굽은 기형의 사과나무 아래 죽은 새들을 끌어다 묻었고
가벼운 농담처럼
꼬리와 날개가 파닥거리는 거짓말들이 주렁주겅 매달렸다
농장주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검정사과농장]이라는 간판을 당당하게 내걸었고 자석 같은 호기심에 큰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질서 유지를 강조한 농장주인은 꼬리와 날개를 떼어낸, 둥글게 잘 다듬어진 거짓말을 의기양양하게 건네주었고 큰손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검정사과라며 흥분을 했다
이미지처럼 속이기 쉬운 것도 없는 법이지
농장주인은 우아하게 생긴 고양이 이미지 십여 마리를 슬쩍 풀어놓았고 이것으로 거짓말 농장의 아름다움은 극대화되었다
거짓말 장사가 대박을 치자 농장주인은 죽은 박쥐나 두더지를 가지고 오는 자들과도 암암리에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공급이 끊기게 되자 획기적인 상품으로 자신의 목을 사과나무에 매달았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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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한혜영/ 1994년 『현대시학』& 1996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올랜도 간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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