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문인의 쇄국적 개인주의
강기옥
비행기가 없던 시절 세계를 잇는 고속도로는 해로였다. 육지에서 강물이 가장 빠른 길이었듯 바다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문화를 교류하는 통로였고 재화를 나누는 무역로였다. 그러나 정복의 길이자 지배의 길, 전쟁의 길이 될 때가 많았다.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시대의 전쟁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길 경쟁이라면, 15~16세기 지도와 나침반을 해로를 탐사하던 '항해시대'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정복자의 길이었다. 그래서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했다.
8세기 말에서부터 11세기 초까지 해상을 통해 유럽과 러시아를 침공한 바이킹족은 해상세력의 확장성을 보여 주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확장하던 시대는 바다를 재패하는 능력이 국력과 비례하는 실례다. 뒤이어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은 바다를 지배하여 태양이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군림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1371년 해상주민의 바다 출항을 막는 해금海禁 정책을 발표했다. 송 · 원 시대의 해상 실크로드의 해로를 봉쇄하고 농업을 중시하여 외부와의 단절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조카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위에 오른 영락제는 아버지와 달리 해상세력을 키워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8년 동안 7회에 걸쳐 대항해를 단행했다. 138m의 모함과 대형선박 60여 척, 중형 147여 척 등 217척에 27,000여 군사를 태우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평화와 화합의 시대를 열었다. 정복과 약탈을 전제로 한 식민지시대의 항해와는 달리 중국을 알리는 상생의 항해에 주력했다. 1510년에 해로를 탐색하던 포르투갈의 원정대는 길이 27m 내외의 50톤 100톤 120톤의 배 3척에 겨우 160명 정도의 인원이 동승했던 것에 비하면 가히 해상 군단이었다.
그러나 5대 선덕제에 이르러 정화의 해상군단은 해체되고 또 다시 바닷길을 막았다. 그렇게 해군을 경시한 전통의 결과는 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17~18세기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었던 중국이 서방 세력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것이다. 바닷길을 막아 아편전쟁과 같은 수치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강대국에 땅을 할양하는 수모까지 당하는가 하면 무역항을 열라는 서방의 압력에 맞서다가 불평등조약인 북경조약까지 맺었다.
청나라가 서구 세력에 당하는 것을 본 일본의 애도 막부는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문을 열었다. 1853년에 미국 페리제독의 압력에 의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개항하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다만 청나라 교육효과에 의해 일본은 발빠르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식민지를 지배하는 전화위복의 길을 걸었다.
이제 쇄국은 없다. 지구촌 시대에 접어들어 한 나라가 잘못되면 세계 모든 나라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공멸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든 것이 다 열려 있어 운명공동체로 엮어진 세상이라 모두가 잘 돼야 한다.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쇄국정책이다.
'학문과 취미는 공유해야 가치가 있다'는 명제 아래 세미나와 학술 연구 등을 통해 지식도 공유하는 열린사회가 되었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오히려 문이 굳게 닫혔다. 절약이 미덕이던 시절에는 가난하여 물자가 귀했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는 열려 있어 살 맛이 있었다. 부족해도 공유하고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공존공생의 사회였다. 그러나 소비가 미덕이라는 풍부한 사회에 접어든 요즈음에는 인간관계는 더 삭막해졌다. 내 주장에 따라야 하고 대화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타도의 대상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필자는 '쇄국적 개인주의자'라 칭한다.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지적한 정현종 시인은 그래도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바다는 사람의 마음일진대 마음을 열고 닫는 것 역시 개인의 문제다. 바다는 쇄국의 대상이기도 하고 개방의 대상이기도 하다. 여러 나라들 중 선택적으로 쇄국과 개방을 선택할 수 있듯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쇄국과 개방의 대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그렇듯 개인도 정치 성향에 바탕을 두어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쇄국정책의 사례를 장황하게 전술前述한 이유도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쇄국적 개인주의에 젖어 있는 현실을 짚어보고자 함이다. 정년이 없이 자기의 생각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전문인이기에 문인의 모임에서는 정치에 오도된 풍향에 좌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미나나 문학 토론장에서까지 쇄국적 대인주의를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강기옥 / 본지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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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문학』2019-겨울호 <권두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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