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침묵 속에서 걸어 나오는 노래_ 향가를 위하여/ 이혜선

검지 정숙자 2020. 2. 11. 16:15


<서문>


    침묵 속에서 걸어 나오는 노래_항가를 위하여


    이혜선



  현재 전해지고 있는 향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14수, 『균여전均如傳』에 11수로 모두 25수이다.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대에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이 편찬되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현재 그 책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최초의 향가는 진평왕대(579~973)의 『서동요』와 『혜성가』이고, 마지막 작품으로 고려 광종대(917~973)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가 최행귀의 한역시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 후 1120년에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향가의 진존형태로 보고 있는데,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향가는 더 이상 창작되지 않았다.


  엘리엇(T. S. Eliot)은 그의 논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전통과 역사의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통은 첫째 역사의식을 내포하는데 (중략) 역사의식으로 말미암아, 작가가 작품을 쓸 때 그는 골수에 박혀있는 자신의 세대를 파악하게 되며, 호머 이래의 유럽의 문학 전체와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자국의 문학 전체가 한 동시적 존재를 가졌고 또한 동시적 질서를 구성한다는 느낌을 반드시 갖게 된다. 이 역사의식은 일시적인 것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항구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고, 일시적인 것과 항구적인 것을 함께 인식하는 의식이며, 문학자에게 전통을 갖게 하는 것이다."

  우리 『향가시회』동인들은 「황조가」와 「구지가」로 대표되는 고대 문학으로부터 향가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 근대의 모든 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전체가 동시적 존재를 가졌고 또한 동시적 질서를 구성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천 년 전 향가문학을,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오늘에 접맥하여 다양한 현대향가를 창작하고, 전통단절론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시대가 변해가는 만큼, 전통적 향가의 치리治理, 치병治病, 기원祈願, 계청啓請, 주술적呪術的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는 없지만, 4구체, 8구체, 10구체의 형식을 가능한 대로 지키면서 오늘이라는 시대성과 삶에 맞는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형상화하려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넘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고, 침묵하는 문학의 역사를 일깨워 현재로 걸어 나오게 할 것이다.

  일시적인 노래가 되살아나서 항구적인 역사 속에서 새 옷을 입고 영원의 노래로 거듭나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끝까지 사랑받는 '현대향가'를 부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각사麟角寺의 영정 속에서 일연선사가 우리 향가시회 동인들에게 손을 흔들며 보이지 않는 죽비를 치고, 『삼국유사』속에서 걸어 나온 단군왕검께서 빙그레 미소를 보내주신다.

  2019년 늦가을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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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가시회_현대향가 제2집『가사 중의 가사』에서/ 2019. 12. 23. <시와표현> 펴냄

  * 이혜선/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시문학』추천완료, 시집 『새소리 택배』『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등,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이혜선의 명시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