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터미널/ 한정원

검지 정숙자 2020. 1. 14. 03:02

 

<권두시>

 

    터미널

 

    한정원

 

 

  터미널이 시키는 대로 침묵했다

 

  눈물이 가자는 곳으로 보내주었다

  고요가 가리키는 오후 여섯 시까지의 기록

 

  회전문 세 번째 칸에 걸려있는 돌멩이를

  두 동강이 난 마지막 인사를

  흩어진 음성의 투명한 입자들을

  교통카드에 끼워 맞췄다

 

  가방의 지퍼를 열고 무언가 찾는 듯

  푸른 가죽 속 꽃송이버섯이 단단하게 잡혔다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라는 듯

  터미널은 마침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전광판 위 백 개의 행선지로 깜빡깜빡 흘러갔다

 

  진료기록부에 적힌 라면 부스러기 같은

  Terminal- 위의 철자를 읽었어야 했는데

  단추를 잠그는 시간에

  한마디는 더 할 수 있었는데

  짧은 꿈이 오록렌즈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들숨을 굴절시키고 있었다

 

  어둠에 불을 붙여

  눈 밝은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하듯

  슬픈 혀는 아픈 사람의 일생에 달라붙었다

 

  세븐일레븐에서 튕겨나온 김밥 냄새가

  쿵, 쿵, 레지스탕스 발자국으로 쫓아왔다

 

  마지막 버스가 시키는 대로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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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19-겨울호 <권두시>에서

  * 한정원/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마마 아프리카』『낮잠 속의 롤러코스터』『그의 눈빛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