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오태환_ 현대시의 효시에 관한 질문 2 (발췌)/ 불노리 : 주요한

검지 정숙자 2020. 1. 8. 03:45

 

<권두언>

 

    불노리

 

    주요한(1900-1979, 79세)

 

 

  아아날이저믄다. 서편西便하늘에, 외로운강물우에, 스러저가는 분홍빗 놀 …… 아아 해가저믈면 해가저믈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우는밤이 또오것마는, 오늘은사월이라 패일날(파일날-필자) 큰길을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듯기만하여도 흥성시러운거슬 웨나만혼자 가슴에눈물을 참을수업는고?

 

  아아 춤을춘다. 춤을춘다. 싯벌건불덩이가, 춤을춘다. 잠잠한 성문城門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랫냄새, 밤을깨물고 하늘을깨무는횃불이 그래도무엇이부족不足하야 제몸까지물고뜨들때, 혼차서어두운가슴품은 절믄사람은 과거過去의퍼런꿈을 찬강물우에내여 던지나, 무정無情한물결이 그기름자(그림자-필자)를 멈출리가이스랴?---아아 꺽거서 시들지안는 꽃도업것마는, 가신님생각에 사라도죽은 이마음이야, 에라 모르겟다, 저불길로 이가슴태와버릴가, 이서름살라버릴가 어제도 아픈발 끌면서 무덤에가보앗더니 겨울에는 말랏든꽃이 어느덧피엇더라마는 사랑의봄은 또다시안도라오는가. 찰하리 속시언이 오늘밤이물속에……그러면행여나불상히 녀겨줄이나이슬가……할적에 퉁, 탕, 불티를날니면서 튀여나는매화포, 펄덕정신精神을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소리가저를비웃는듯, 꾸짖느듯. 아아 좀더강렬强烈한열정에 살고십다.저긔저횃불처럼엉긔는연기煙氣, 숨맥히는불꽃의고통苦痛속에서라도 더욱뜨거운삶을살고십다고 뜻밧게 가슴두근거리는거슨 나의마음…….

 

  사월四月달 다스한바람이 강을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노픈언덕우에 허어혀케흐늑이는사람떼, 바람이와서불적마다 불비체물든물결이 미친우슴을우스니, 겁만흔물고기는 모래미테 드러백이고, 물결치는뱃기슭에는 조름오는 「니즘」의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얼린거니는기름자 닐여나는우슴소리, 달아논등불미테서 목청껏길게배는 여린기생의노래, 뜻밧게정욕情慾을잇그는 불구경도인제는겹고, 한잔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인제는실혀, 즈저분한뱃미챵에 맥업시누우면 까닭모르는 눈물은눈을 데우며, 간단업슨 장고소리에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불니는욕심慾心에못견듸여 번득이는눈으로 뱃가에뛰여나가면, 뒤에남은 죽어가는촛불은 우르거진치마깃우에 조을때, 뜻잇는드시찌걱거리는 배젓개소리는 더욱가슴을누른다…….

 

  아아 강물이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우슴이다. 차듸찬강물이 껌껌한하늘을보고 웃는우슴이다. 아아 배가올나온다. 배가오른다, 바람이불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니서잠자는능라도陵羅島까지, 물살빠른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귀 너의애인愛人이 맨발로서서 기다리는언덕으로 곳추 너의 뱃머리를돌니라 물결끄테서 니러나는추운바람도 무어시리오 괴상한우슴소리도 무어시리오, 사랑일흔청년靑年의 어두운가슴속도 너의게야 무어시리오. 기름자업시는 「발금」도 이슬수업는거슬---. 오오 다만 네확실確實한오늘을 노치지말라. 오오사로라, 사로라! 너의 발간횃불을, 발간이셜(입술-필자)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발간눈물을…….

    - 전문,『창조創造』창간호, 1919. 2.

 

 

   한국 현대시의 효시嚆矢에 관한 질문 · 2 (발)_ 오태환/시인, 본지 주간

  최초의 현대시로 널리 이해되고 있는 작품이 주요한의 「불노리」다. 1919년 순문예동인지 『창조創造』창간호에 발표된 이 시는 '최초의 근대시', 또는 '최초의 자유시'로 지칭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와 '현대'를 구분짓는 개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측면과 자유시가 현대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형식적 규준으로 작동해 온 실정에 비추면, 그러한 표현들은 '최초의 현대시'와 별반 뜻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근대'와 '현대'는 동일하게 'Modern'의 의미범주 안에 있으며, 서로 착종된 채 쓰이기도 한다. 더구나 '최초의 근대시' 「불노리」와 시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최초의 현대시'라 일컬어지는 작품은 더 이상 언급된 적이 없다.

   주요한(1900-1979)은 1919년 교토의 유학생 잡지 『학우學友』에 「에튜우드」를 게재하고, 동년 2월 『창조創造(창조사)에 「불노리」를 발표한다. 편집인 겸 발행인인 그가 김동인 · 전영택과 더불어, 도쿄에서 편집하고 요코하마에서 인쇄한 『창조創造』는 국판菊版 84면에, 재단하지 않고 접은 채로 제본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스스로 페이퍼나이프로 가르면서 펼쳐 읽는, 소위 '프랑스장'을 선택하여 멋을 돋운다. 「불노리」는 김동인의 「약한자의 슬픔」등과 함께 표지목차로 소개된다.(p. 2-4)

 

  주요한의 「불노리」를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보는 시각은 이미 그 기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한국 시사 전반을 배경으로 한 유기적이고 거시적 입장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당시대의 특수한 형편만을 독립변수로 삼은 파편적이고 국소적인 시야에서 기준을 마련했기 때문에 그 한계는 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창조創造』창간호의 맨 앞에 놓인 이 작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기점으로 승인하기 어려운 이유는 문학적 완성도에서도 확인된다. 문학사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 시라는 권위를 벗기고 맨눈으로 읽었을 때, 화자의 정서는 도착倒錯이나 착란錯亂을 떠올릴 정도로 위태로운 곡예를 거듭할 뿐이다. 사별한 님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비탄에 잠겨 있다가, 폭죽 소리에 홀연 무모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고, 급기야 뭇 사내들에게까지 그것을 투사해서 조악한 어조로 부추기는(충고하는) 뜬금없는 목소리는 어떤 각도로도 정당화하기 쉽지 않다. 표현경로에서 자주 노출되는 조잡함과 속악스러움의 기미는, 이제 19세에 불과한, 척박한 시대를 건너는 청년시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겠다. 그러나 시의 근간을 형성하는 죽은 님에 대한 그리움의 모티프는, 새 시대를 헤치는 청년다운 일말의 도전이나 새로움도 발견하기 어려운 타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식적 감상의 산만한 진열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한갓 포즈에 그칠 뿐이며, 매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정성의 부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부분은 현대성을 놓치는 치명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앞에서 언급한 논점들은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을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자학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주요한의 「불노리」는 한국 현대시의 효시라는 타이틀을 얻기에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 이 시는 1920년을 전후한 한국 시단의 폭주하는 꿈과 좌절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동시에, 일찍이 일본 시인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에게 개항기 이후의 시를 사사하고, 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創造』를 간행하여 문학적 열망을 실천하려 했던 청년시인 주요한이 감행하는 모험의 물증 정도로 읽어 충분하다.[p. 9-10(終)]

 

 

   * 블로그주: 「불노리」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위의 글, 전체는 책에서 일독 要(始_2쪽 / 終_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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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2019-겨울호 <권두언>에서

  * 오태환/ 시인,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