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수의 짓는 여자/ 이상남

검지 정숙자 2020. 2. 9. 00:34



    수의 짓는 여자


    이상남



  안방을 독차지한 뻣뻣한 삼베가 여자를 쥐고 흔든다


  잘려 널브러진 망자의 주검에 하루치 일당을 걸고

  한 땀 한 땀 시간을 꿰맨다


  걷다 멈춘 황당한 죽음 앞에 겸손하지 않을 이 있을까

  꿇은 무릎에선 단내가 났다


  술에 절어 허옇게 질린 남편의 발바닥을 접어

  엄지와 검지로 정갈하게 찍어 누른다

  툭 툭 불거지는 손가락 마디가 화끈거린다


  정오를 뚫고 햇살이 방바닥을 쑤시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는 팔 다리 눈두덩

  도포 두루마기 겹저고리 속저고리

  오후까지 이어지는 겹바지 속바지 베개 베개피

  바느질 구멍마다 기억이 와 박힌다

  훠어이,

  통증을 쫓아내듯 멱목 손질에선 진저리를 쳐 본다


  덜컥,

  철창문이 열리고

  비수처럼 달려들던 의존증 환자들의 초점 잃은 눈동자까지

  브라더 미싱으로 촘촘하게 박는다


  퉁퉁 부은 얼굴싸개 손싸개 행전 버선 복건 오낭

  도포끈 허리띠 대님 턱받침 그리고 천금 지요 장매

  부품해지는 살아온 만큼의 부피


  후유,

  쉽게 죽지 못하는 여자가 백 번도 더 죽은 여자를 위해

  창밖 컴컴해지도록 수의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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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인』 2019-겨울호 <시> 에서

   * 이상남/ 경북 포항 출생, 201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