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나나킥/ 김생

검지 정숙자 2020. 2. 1. 13:59



    바나나킥


    김생



  떠나는 그에게서 앞과 뒤가 잘린 사과를 받았습니다

  간밤에 제를 올린 사과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처음 무언가를 접촉해보는 사람처럼

  마지막을 만져보는 사람처럼 없어진 사과의 앞과 뒤를 더듬었습니다


  받은 사과를 맛있게 먹는 일은 중요합니다


  풀냄새가 나는 사과를 씹으며 칼을 지나온 사과를 생각했습니다


  뒤끝 없는 사과에 몰두한 나머지

  찻집 유리창에 상영되는

  펄럭이는 웃음 하나를 골라, 슬쩍 빌려 썼습니다

  더빙영화처럼 우리의 대화는 겹쳐질수록 더 멀어졌습니다


  사과는 던지는 자의 몫이 아니라, 받는 자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축구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서리를 가볍게 걷어 올렸을 뿐인데 골문을 흔드는군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사과라는 동음이의를 사용한 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사과하는 언어 행위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대화 방식이다. 하지만 그 던져진 사과가 사과처럼 상대방에게 가서 먹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의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와 두 사람의 관계 같은 것이 모두 문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다들 분명한 말의 목적만을 생각하고 그 말이 가져오는 효과와 정서적 반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목표를 벗어난 빗나간 바나나킥이 "골문을 흔"들 듯이 우회적인 방식으로 던져진 언어와 방향을 잃은 갈피 모를 언어가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의 언어가 바로 그런 것이다. (p. 시 15/ 론 120)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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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여기는 눈이 내리는 중입니다』에서/ 2019. 8. 23. <현대시학사> 펴냄

  * 김생/ 전북 고창 출생, 2014년『시인동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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