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천 년
정숙자
칸트가 될까 했더니 이미 칸트가 있다
이상이 될까 했더니 이미 이상이 있다
피 이상의 피 흘려볼까 했더니 이미 십자가를 세우고
간 자가 있다
사과 한 알 째려볼까 했더니 이미 이브가 따 먹었을 뿐
아니라, 아기 낳는 일까지도 전혀 새롭지 않은 것으로 만
들어버렸다
‘살해의 사례’는 어떨까…?
어떨까…?…?…? 그마저도 이미 카인이 끝장을 냈다
‘글을 읽’고 ‘그를 읽’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는 어법 또한 비트겐슈타
인의 것임을 말해야 한다.)
더 이상의 새로움은 ‘이미’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짙푸른 폭발이 있다
봉쇄된, 봉쇄된, 봉쇄된 기암-절벽을 뚫어
빈틈을 입증하는 뿌리가 있다
먼 산 이끄는 외솔이 있다
-『예술가』2011-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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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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