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떼의 도강이 그리 처절한 것은
그들에게 핸드백이 없기 때문이다
정숙자
인간인들
핸드백 없이 아프리카
초원에 던져진다면 누 떼보다 나을 리 없다
우리의 삶도 거뜬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도강은 왜 그
리 시퍼런 행려도일까. 가젤, 임팔라, 벌새보다도 그들의
지평은 거칠고 차다. 부딪힘, 넘어짐, 굴러 떨어짐 그 속수
무책의 수족이 백악기에 엮인다. ‘저 텅 빈 어깨에 핸드백
하나만 둘렀더라면… 저 텅 빈 어깨가 핸드백 하나만 입었
더라면…’
인간으로
태어났을지라도 핸드백이
없다면 진(화하지 못한)다. 핸드백은 무기다
휴대폰 거울 손수건 화장품 책 디카 태블릿 수첩 펜 지
갑…. 이런 것들이 실은 실존을 돕는 최신예 무기 아닌가.
핸드백은 당대의 집약. 정체의 총체. 핸드백을 들지 않
고는-도강은커녕 잠깐의 외출도 곤란한 도시의 풍속. 포
트폴리오도 블랙박스도 구체성을 확보한 핸드백이 아니
고 뭐란 말인가?
누 떼여, 부디
강을 건너지 마오. 누 떼는
그예 강을 건너시네. 이 일을 어찌 할꼬, 어찌 할꼬*
누여, 누 떼여! 수천 년 걸리면 어떻습니까. 당신의 다
음, 당신들의 다음다음다음 세대 또한 당신인 걸요. 준비
없이 강물에 뛰어드는 건 멋있습니다. 그러나 급류가, 포
식자가, 절벽이 기다립니다. 핸드백을 만드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성운이 바뀐 어느 날, 당신들의 핸드백을 제
딸이 사겠습니다.
-『시와 경계』2011-겨울호
*고대가요「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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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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