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누 떼의 도강이 그리 처절한 것은 그들에게 핸드백이 없기 때문이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1. 12. 02:52

 

 

      떼의 도강이 그리 처절한 것은

    그들에게 핸드백이 없기 때문이다

 

      정숙자

 

 

                         인간인들

                   핸드백 없이 아프리카

       초원에 던져진다면 누 떼보다 나을 리 없다

 

  우리의 삶도 거뜬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도강은 왜 그

리 시퍼런 행려도일까. 가젤, 임팔라, 벌새보다도 그들의

지평은 거칠고 차다. 부딪힘, 넘어짐, 굴러 떨어짐 그 속수

무책의 수족이 백악기에 엮인다. ‘저 텅 빈 어깨에 핸드백

하나만 둘렀더라면 저 텅 빈 어깨가 핸드백 하나만 입었

더라면

 

                         인간으로

                 태어났을지라도 핸드백이

       없다면 진(화하지 못한)다. 핸드백은 무기다

 

  휴대폰 거울 손수건 화장품 책 디카 태블릿 수첩 펜 지

. 이런 것들이 실은 실존을 돕는 최신예 무기 아닌가.

핸드백은 당대의 집약. 정체의 총체. 핸드백을 들지 않

고는-도강은커녕 잠깐의 외출도 곤란한 도시의 풍속. 포

트폴리오도 블랙박스도 구체성을 확보한 핸드백이 아니

고 뭐란 말인가?

 

                          누 떼여, 부디

                 강을 건너지 마오. 누 떼는

    그예 강을 건너시네. 이 일을 어찌 할꼬, 어찌 할꼬*

 

  누여, 누 떼여! 수천 년 걸리면 어떻습니까. 당신의 다

음, 당신들의 다음다음다음 세대 또한 당신인 걸요. 준비

없이 강물에 뛰어드는 건 멋있습니다. 그러나 급류가, 포

식자가, 절벽이 기다립니다. 핸드백을 만드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성운이 바뀐 어느 날, 당신들의 핸드백을 제

딸이 사겠습니다.

  -『시와 경계2011-겨울호

 

   *고대가요「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참조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