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보로스*
배세복
지난밤 꽃뱀이 그림을 그렸네요 이를테면 압착화 같은 거죠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이 꽃은 그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 듯하네요 속력과 폭력이 앞다투는 아스팔트 위에서 압착의 자세를 가리는 이 딱히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꽃잎이 아니라 단풍잎일지 몰라요 가을은 물것들이 마지막 피를 토하는 계절, 억새풀 따위에 갈아온 칼날 같은 혓바닥이 어둠 속에서 번쩍! 한 번은 빛을 발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약자에세 독기란 겨우 제 살 도려내는 것일 뿐, 제 안으로 살기를 품어버리는 힘일 뿐, 머리 터진 꽃뱀은 마지막으로 제 몸을 돌아봤겠죠 육체는 습속처럼 꿈틀거리고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은 채 꼬리로 입을 막아 울음을 가두었겠죠 욱여넣듯이, 그가 다음 생을 꿈꾸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몸뚱아리가 전부인 것들이 또아리 트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전문-
* 꼬리를 삼키는 자
해설> 한 문장: 「우로보로스」에서는 계속해서 "살아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시인의 포부가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의 서두에서 화자는, "그림"이 한순간 만개하고 이내 시들어버릴 꽃만큼이나 덧없는 것이라고 쓴다. "지난밤 꽃뱀이 그림을 그렸네요 이를테면 압착화 같은 거죠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이 꽃은 그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 듯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자신이 끊임없이 "꽃"과 "그림"을 추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속력과 폭력이 앞다투는 아스팔트 위에서 압착의 자세를 기리는 이 딱히 없"으니까 "꽃"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만큼은 이어가겠다고 결의를 밝힌 시인은, 그리고 마침내 우로보로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로보로스는 입으로 꼬리를 물고 있는 상상의 생명체이다.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자기순환하는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살아있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만난다.(p. 100-101) (전철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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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에서/ 2019. 10. 1. <시산맥사> 펴냄
* 배세복/ 충남 홍성 출생, 2014년《광주일보》로 등단, <VOLUME>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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