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아까는
석복惜福에 대한 생각
이성림/ 수필가
대체로 우리 조상들은 석복이라 하여 '복을 아낀다'는 말을 덕담으로 많이 써왔던 듯하다. 이것은 청렴 · 근면 · 결백 · 검소를 밑바탕으로 한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특히 우리 선조들이 유념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검소한 데서 사치한 데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사치한 데서 검소한 데로 나오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습속習俗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살찐 말을 타고 좋은 옷을 입은 자를 보면 개, 돼지보다 못하게 여겨 의복과 음식과 거처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검소하게 하려 하였던 것이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태도요, 미풍양속이었던 것이다.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나라의 네 가지 기초로 숭상하여, 근검절약을 우위로 한 생활 자세를 끊임없이 실생활에서 적용되도록 가르쳐 왔던 것이다.
영조와 정조대왕이 특히 검박하였다고 하는데, 며느리 세자빈이 왕손을 낳았을 때 첫 훈계가 '아기를 부디 잘 기르되 의복을 검박히 하는 것이 복을 아끼는 도리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왕실의 이와 같은 검약을 숭상하는 풍토는 자연히 아래로 전파되었음은 물론이다.
가까이는, 고종이 두루마기 안을 서너 군데나 기워서 입으셨다든지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도 처음에 싸는 포대기나 속옷은 신하들 중에 복록福祿이 많은 사람의 헌옷을 썼다는 사실도 바로 이 검약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한중록閑中錄』을 보면 정조대왕은 일생 명주 이불을 덮지 않고 무명 이불을 덮었으며 수랏상의 찬품饌品도 서너 그릇 외에 못 놓게 하셨다고 한다. 한 해 음식물 쓰레기 낭비가 8조 원에나 이른다는 신문 보도를 접하고 보는 오늘날의 현실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개탄할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곡식 '낟알 한 톨 한 톨에 농민들의 신고가 들어있다[粒粒辛苦]고 했으며, 민농시憫農時에도 '쟁반에 밥이 알알이 다 고생 덩어리란 것을 뉘 알리요'라는 훈계의 말씀이 참으로 귀에 쟁쟁하다. 쌀뿐만 아니라 원래 우리 조상들은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신앙같이 몸에 배어서 분수에 안 맞는 사치는 자손들에게 엄중히 경계하였다.
'주자십회朱子十悔' 중 '있을 때 아껴 쓰지 않으면 후에 뉘우친다[富不儉用貧後悔]'는 글은 만고의 진리이다. 검소하고 겸손 · 개결하여 시속에 구차스럽게 부합하지 않으려 한 선조들의 조신한 태도를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물질은 박해도 인정은 두터운 것이 우리네의 미풍양속이었으며 모든 것은 밖에서 체면치레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임을 근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게으르고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몸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요, 부지런히 힘써서 쉬지 않음은 몸에 덕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겼다. 게으르고 사치하지 않으면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할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일찍 이루고 나서 느지막이 쉬게 되면 가히 근심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선조들은 '거칠고 편안한 것은 몸을 베게 하는 날카로운 칼날과 같으니 비록 그 칼날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소리 없이 죽이는 바와 같다'고 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헛되이 그 몸을 수로롭게만 하는 것이다. 검소함으로써 부지런하게 되면 더욱 더 여유 있게 되고, 부지런함으로써 검소하게 되면 부족한 것을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귀하되 능히 부지런하면 몸은 수고로우나 가르침을 이룰 수 있고, 부유하되 능히 검소하면 잘 지켜내어 절약하니 집안이 날로 번창하게 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사람이 수고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면 선善을 생각하게 되고 편안하게 되면 악惡을 생각한다 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공검恭儉한 성품으로 높은 자리에서도 표백한 명주옷을 입어 화려하고 문채나는 것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가사를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수고를 일삼아 아랫사람들에게도 모범을 보였다.
실제 행한다는 것이 매우 쉬운 것 같은데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마음 두기에 달렸다. 몸소 부지런히 수고하고 절약하여 검소하게 처신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선조들이 실생활에서 몸에 밴 검약한 석복사상을 잘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질이 풍요로운 현 시대에 검약한 풍속을 두터이 하여 사치하고 화려한 바탕을 그치게 하면 교화의 뜻이 천하에 울려 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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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함께』(창간호) 2019-여름호 <에세이_ 사유와 성찰의 공간>에서
* 이성림/ 1990년『문예사조』로 수필 부문 등단, 저서『한국문학과 규훈 연구』『문학의 이해』『수필 강의록』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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