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섬, 이타카
정숙자
여기, 나를 기다려주는 페넬로페는 없지만
여기, 나를 그리워하는 오디세우스는 없지만
나는, 여기 이타카 섬을 사랑한다.
결국 돌아온 섬
나만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나의 페넬로페와, 나의 오디세우스와, 나의 영혼과 몸과 모든 세계가 함께하는 이곳 '나'라는 싱글턴(singleton)이 사는 집.
몇 권의 책과
많은 책들이 날아오는 주소와
컴퓨터와 TV와 긴 나무책상과 필기구들이 함께 사는 곳
에어컨은 없지만, 난방은 부실하지만, 책 읽기에 알맞은 산책로가 있고, 베란다 창밖엔 오래 자란 후박나무와 까치들도 드나드는 여기 이 집은, 내 젊은 시절 당호로 썼던 공우림空友林. 이제 헤아려보니 이곳이 바로 나의 <이타카 섬>인 것이다.
예순여덟이면 어딘가 한 바퀴 돌아왔다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돌아온 섬-이타카! 오직 나 자신만을 데리고 사는 집. 봄이면 실오라기발가락거미가 가끔 눈에 띈다. 몸통은 있는 듯 없는 듯. 갈색의 긴 발가락들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 욕실의 흰 타일 벽에 조용히 붙어있거나 어디론가 이동한다. 아직은 찬 기운이 남아있는 때, 그에게는 온도/습도 알맞은 장소가 여기 이곳이었겠지.
나는 그에게 인사한다. “안녕? 왔어?” 그리고…,
그는 어디론가 제 갈 길을 가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그러나 그는 잊히지 않을 만큼 눈에 띈다. 입김만으로도 손상될 것 같은, 0.5㎜볼펜심 굵기만도 못한, 그 가느다란 다리가 그의 몸을 지탱하고 이동시키는 것이다. 너무너무 작아서 깨끗한 그. 어느 것 하나 보살피지 않아도 내 곁에서 ‘살아있음’을, ‘생명’임을 알려주는 그. 내 모든 말을 알아들을 것만 같은 그. 내 모든 심정도 다 이해해줄 것만 같은 그. 우리 인간들보다는 천 배나 만 배나 우아해 보이는 그. 그런데 ,
2018년 6월 9일. 오전 9시 20분.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 찍었다. 그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한동안 함께 살고 있다고 믿었던 그를 내 화장품 사이에서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덜컥! 울컥! 관절이 접혀 있긴 하지만 몸길이가 불과 2㎝밖에 안 되는 그가(지금 재어봤다. 책장 유리문 안에 넣어두었음. 현재시각 2019.3.20-14:14.) 그 연약한 발가락으로 어떻게 거실 책장 밑까지 기어왔을까. 그리고 왜 굳이 내 화장품 사이에서 숨을 거두었을까?
나는 핸드그림과 스킨, 로션 정도는 책장 밑 맨바닥에 놓고 쓴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집어 올리거나 내려놓을 때 허리를 굽혔다 펴기 위함. 그러면 조금이나마 척추 뼈가 조율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효과가 있다. 누적의 힘이란 그런 것이겠지. 목표를 두고 꾸준히 지속한다는 건 하찮은 행위일지라도 헛되지 않다. 그건 그렇다 치고…, 거미의 마음을 읽자마자 내 가슴속 뜨거움이 출렁거렸다. 굳이 화장품 사이에서 숨을 거둔 까닭은 나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려 했음이 아닌가. 무심한 청소기에 흡수되어 버리거나, 밟히거나, 어느 틈서리에 끼었다면 내 눈에 띄는 것마저도 불가능하지 않았겠는가. 그걸 다 알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 가냘프디가냘픈 것이.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내 화장품 자리까지 파악했단 말인가. 그건 바로 냄새였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서 비롯되는 화장품 냄새를 기억하고 어렵사리 길을 더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 도착하여 안심하고 영면에 들었을 것이다. 온힘을 기울여 욕실에서 거실까지… 그에게는 천리나 되었을 길을…, 나는 그가 바스러질까봐 손으로 집지도 못하고 종이를 바닥에 댄 후 호오~ 입김을 불어, 그를 종이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다리들을 안쪽으로 모으고 조용히 내 앞에 있었다. 이제 “안녕?”이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안녕!”을 고했다.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긴 ‘안녕. 안녕. 안녕.’을!
그는 지금도 내 책장 유리문 안에 잠들어 있다. “거미야, 안녕 ,/ 2018.6.9-9:20/ 검지 정숙자”라고 쓰인 메모지 위에. 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 때보다도 경건해진다. 내가 내 몫의 시간 한 바퀴를 돌아오면서 맺은 인연 가운데 매우 독특한 우정을 보여준 그였기에. 그 또한 어딘가 다른 우주에 가 있더라도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다. 낡은 집이지만 여기, 이 집에서 내가 얼마나 빈틈없이 시간과 사물을 아끼며, 또한 정신을 다듬으며 조촐히 늙어가고 있는가를…, 그보다 더 잘 아는 존재는 없을 것이기에.
삼십 년간을 한자리에 머물면서도 ‘어딘가 한 바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니! 여기가 ‘이타카 섬’이라는 언술(discourse)이 허용되다니! 시세계와 시인들과 시와 함께한 여기-이곳을 언젠가 그를 만나면 즐겨 회상하리라. 내 욕실의 물소리와 화장품 냄새와 책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네 우정’을 떠올릴 때마다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내 시공이 아파올 적마다 위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꼭이 덧붙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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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함께』(창간호) 2019-가을호 <에세이_ 사유와 성찰의 공간>에서
* 정숙자/ 1986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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