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의 너트
정숙자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
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거를 대봐, 어서 대보라
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과 물것 속에서
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란…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
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안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
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애지』2011-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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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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