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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료와 억압의 소산물/ 권성훈

검지 정숙자 2019. 6. 25. 23:25

 

 

    시치료와 억압의 소산물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1. 무의식의 억압과 언어의 정화

  우리는 웰빙(well-being)을 지나 힐링(healing) 시대를 살고 있다. 웰빙은 몸을 위한 것이고, 힐링은 정신을 위한 것을 의미한다. 음식을 통한 몸, 예술을 통한 정신, 이것들의 지향점은 건강이다. 신조어처럼 되어버린 웰빙과 힐링은 다양한 현대인의 체질과 성격에 맞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가리킨다. 살펴볼 힐링의 경우 상처 입은 감정의 정화를 목표로 한다. 지난 10여년간 치유라는 이름으로 미술 · 음악 · 문학 · 체육 등 예체능계뿐만 아니라 명상 · · 향수 등의 융합 분야로 확충되고 있다. 이것은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이 현대의학에서 대체의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함으로써 본격화 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각 분야 힐링 전문가들은 우리의 건강을 힐링을 통해 보호(care)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시치료는 음악이나 미술 장르에 비하면 치유로서 회자되어온 기간이 짧다. 그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서 보여주듯 치유는 문학에 함의된 하나의 기능으로써 당연하게 여겨 왔다. 그것은 소수 인문학의 공유자에게 편중되어 오히려 치료로서의 문학이 대중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혼이 아니라 정신(psychiatric)이라는 분열적 인식이 생기면서 창작은 자기 치유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즉 19세기 말엽 정신분석과 분석 심리학을 주창한 프로이트, 융의 시대에 이르러 예술은 신경증같이 일어나는 증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글 역시 시는 시인 내면의 상처 입거나, 해결되지 못한 증상이 표현되어 나온, 즉 '억압의 소산물'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시치유(poetrry therapy)는 '시(poetry)'와 의학적으로는 '돕다'라는 뜻인 '치료(therapeia)"의 합성어다. '시(poem)'와 '포에트리(poetry)'에서 기원한 것을 볼 때, 시치료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간다. BC1000년 경 고대 그리스 테베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치료하는 장소'라고  쓰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당시 병리학적으로 육체적 · 정신적 건강과 관련해서 문학을 최초로 언급한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몸의 고통이 있는 경우 히포크라테스에게 가지만 정신적 고통이 있는 경우 아폴로 신전에 가서 기도를 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인들은 육체적 · 정신적 기능과 고통이 다른 만큼 치료법 또한 다르게 구분하였던 것이다. 치료방법으로 정신적 영역에서는 읽기와 쓰기와 같은 심리적 요법을, 내 · 외과 영역에서는 수술과 약제를 처방하였다고 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치료법으로 '처음에는 말', '두 번째는 식물', '세 번째는 칼' 등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환자에게 말-식물-칼 등의 단계로 언어가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이 약제이며, 그래도 효과가 없을 경우에 마지막으로 수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은 도서관을 '영혼의 의학'이라고 할 만큼 언어에 대한 치유성을 믿었고, 임상적 치료법으로 신앙고백, 잠언, 명상록 등과 같이 아포리즘(aphorism)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정신을 집중시키고 내면을 성찰하게 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방법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정화시키고 영혼에 기력을 북돋는데 도움을 준다고 관습적으로 통용되었으며, 좋은 연설을 듣거나 훌륭한 문사를 읽는 것이 고통 받는 환자의 정신을 회복시키며 정신적 치료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이렇게 서양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치료로서의 문학은 16세기 프랑스의 의사이자 풍자작가였던 라블레(Rabelais, Prancois 1494~1553)가 환자들에게 질병의 원인과 관계되는 적절한 문학작품을 약과 같이 처방하였다. 19세기에는 미국이나 영국의 병원에서 성서나 종교 서적을 환자에게 읽게 하다가 점차 자신의 병적 증상과 관계된 독서를 하게 하였다. 이후 환자를 위한 도서관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치료가 시행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육군병원의 발달과 함께 독서치료 요법이 파급되었으며, 치료로서의 문학이 공고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쟁으로 인하여 정신적 충격에 빠진 사람들을 상대로 한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급속한 발달로 말미암아 오늘날 문학치료는 읽기와 쓰기로 구분되면서 독서치료, 서사치료와 같은 읽기치료와 저널쓰기, 시치료와 같은 쓰기치료 등으로 체계화되었다.

 

 

  2. 억압의 증상들을 위하여

  근본적으로 시는 우리의 총체적인 언어 수행으로 자기 내면의 억압되거나, 상실된 것을 모색하게 해 준다. 정신분석학에서 억압(抑壓, repression)은 불안에 대한 기본적인 방어기제다. 방어기제는 의식에서 용납하기 힘든 생각, 욕망, 충동 등을 무의식에 눌러 버린다. 무의식에서 잉여로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는 육체에 가해지는 상처에서 정신에 가해지는 상처로 확장된다. 주체가 충격적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면 무의식에서는 억압이 발생되고 일정한 잠복기를 거쳐 신경증으로 발전하며 불안감의 다양한 증후로 나타난다. 트라우마는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사건과 사고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하며, 강박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생기는 일종의 노이로제가 된다. 이것은 신경증을 드러내며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실과의 원활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만드는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것이다. 자아는 이 파편들이 자아를 찌르며 학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감정, 상상, 기억에서 의식되는 것을 차단시킨다. 억압은 자아를 위협하는 경험들을 통제함으로써 불안을 차단하거나, 지연시킨다. 고통스러운 체험은 불안을 일으키므로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억압으로 불안을 방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투사(projection) · 상징화(symbolization) 등 다른 방어기제가 동원되기도 하지만 무의식의 신경증이나 정신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문자화된 언어, 즉 시인의 시 쓰기에서도 동일하게 쓰인다.

  이렇게 언어적 증상은 질환을 앓을 때 나타난다. 이 나타남은 신체로 자각되기도 하고, 정신적 증후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증후는 우리의 몸 안에서 몸 밖으로 출현하는 것으로써 몸과 동일성을 지닌다. 여기서 몸을 떠나있는 증상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주체로서 지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몸을 중심으로 한 나타남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의 이동이다. 우리는 돌출된 것을 통해 증상을 파악하고 원인을 유추하게 된다. 이러한 이동은 '무의식의 흐름'이며 '억압'을 의식화한다.

  문학치료에 있어서 "언어 상실이란 결국 총체적으로 잃는 것을 말하고, 치유란 총체적으로 얻는 것"(변학수 『문학치료』, 학지사, 2005, pp16~17)을 말한다. 시치료 또한 언어로서 자아 발견과 자기 통찰에 가 닿기 위한 언어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동안 자아와 세계 간의 인식은 자신의 언어(기억)를 찾게 하고, 그 언어(기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는 시가 기표로 구성된 이미지적 표현이므로 이것을 형상화하면서 자아는 의식을 통해 무의식을 탐구하게 한다.

  우리는 시가 가진 여러 가지 특질들 중에서 치유적인 기능을 외면할 수 없다. 시에서 이미지는 정서와 사고에 재현된 기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상상력을 통해 자유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고, 그 이미지를 통해 정서적 환기가 가능해진다. 시창작은 개인의 무의식을 상상력에 의해 이미지로 표출함으로 억압된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시는 억압과 굴절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상실된 언어(기억)를 의식과 무의식에서 찾게 하여 감정의 변화를 수행하는 정신적 욕망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시창작은 감정의 순화와 정서의 회복이며, 자아에 내재된 갈등을 해소시키는 능력과 적응기능을 증진시킨다.

  한편 시치료의 작용은 내면의 생생한 이미지나 개념,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에 감응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데 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보다 정확한 자아인식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으로 현실을 바로 보게 되며, 그에 근거한 사고를 수행하며 의사소통 능력을 강화시키고 다양한 모습의 자아정체성을 통합하여 심리적 강건함을 가져올 수 있다. 시는 내면적 격렬한 감정들을 털어놓고 해소함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고 새로운 생각, 통찰, 정보들을 의미화하면서 상처 입은 정서를 정비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3. 시치료의 원리를 찾아서

  시치료의 원리는 포이에시스 · 카타르시스 · 아이스테시스로 구분할 수 있다. 포이에시스(poiesi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포이에티케(Poetlike)에서 나온 말로서 창작과 관련한 예술적 활동 전반을 일컫는다. 이는 창조적 글쓰기로서 "단순한 만들기가 아닌, 영혼의 형상화라는 의미에서 치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가지는 창조성인 포이에시스는 참여자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형성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창조적 활동은 참여자의 내적 세계를 진실하게 드러낸다."(이봉희, 「시문학 치료와 문학수업 그 만남의 가능성 모색」, 『한국문예비평연구』제20집, 2006, pp.105~106)() 완성도 높은 포이에시스일수록 시인의 내적 세계를 독특한 시공간으로 재현하며 안전하게 형상화시킨다.

  카타르시스(catharsis)는 『시학』에서 논의된 후 가장 많이 심리적 기제로 쓰이고 있다.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의 기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시학』문예출판사, 2003, p.47)는 것이다. 카타르시스에 대한 이론을 크게 정화이론과 조정이론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화이론은 이미 고대의학에서 쓴 동류요법과 같다. 말하자면 열병은 열기로 다스리고 한기는 한기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요법이다. 이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억압된 기억을 그와 유사한 것을 이끌어내어 소산시킨다. 그럼으로써 억압된 심리를 몰아내고 정화하기 위해서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해소시킨다는 해석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밖으로 발산시켜 치료하려는 정신요법이다. 이렇게 정화이론은 카타르시스를 재귀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킨 뒤에 이들 감정을 몰아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정이론을 "인간에게 정서가 이성 못지않게 인간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불안한 정서는 그 자체로서 해로운 것이 아니지만 적절히 제어되지 못하였을 때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나 감정은 적절히 통제되고 조정되어야(즉, 배설되어야)한다는 것이 조정이론이다."(변학수, 앞의 책, pp.355~356) 동류요법에 의거한 조정이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감정이 이성 못지않게 인간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했다. 불안한 감정이 그 자체로서 해로운 것은 아니며 다만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을 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감정이나 격정은 적절히 통제되고 조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정서를 창조적 외면화로서 표출했을 때, 위험한 정서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그 정서로 인하여 더 이상 생리적 손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유해한 정서는 파괴적인 힘을 상당부분 잃게 된다. 예컨대 시인의 부정적 정서가 범람하여 자신을 압도하는 것을 막고 이러한 정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아이스테시스(aesthesis)는 그리스어로 '심미적 인지'를 말한다.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Baumgarten)은 '아이스테시스를 심미적 경험이 해방된다'는 뜻으로 재해석하였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아이스테시스는 전통적인 신학으로부터 아름다움이 세속적으로 해방된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아름다움을 합리적으로 인식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자동화된 심미적 경험이 부정됨으로써 발생하지만 교훈적 시나 자연을 찬미하는 시에서는 아이스테시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원래의 것이 부정됨으로써 생겨나는 독특한 거리감을 인식하는 데서 발생하고 직관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비투스(Habitus)로 고착된 시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인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아이스테시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정성이 필요하다. 부정성이란 기금까지 습관적으로 고착되어 있던 것에 대한 새로운 환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러한 부정성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부정에서 출발한 창조적 글쓰기는 참여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창조의 과정으로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자각을 하게 되고, 정서와 인지를 동시에 그러낼 수 있는 치유적 원리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정서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인식의 획득은 증상과의 거리 조정 기능으로서 치유성을 가진다. 창조적 글쓰기의 거리조절은 자신이 쓴 글이 내면의 반영인 동시에 객관적인 형태로 외부에 드러남으로 시인의 내면을 거울을 보듯 들여다보게 된다. 시인도 알지 못했던 자아를 드러내는 과정 자체는 여타의 표현 예술치료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자신의 창조물을 객관화하는 것에서 치유적 글쓰기는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부정성의 인식이며 창조적 글쓰기를 통하여 거리조절이 가능해지고 현실세계의 고착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4. 시치료의 기구들

  치유적인 시는 시인의 해소되지 못한 현실적 문제를 주제의식, 상상력, 리듬, 이미지, 비유와 상징 등의 시적 도구(poetic tools)로 창작되어야 한다. 첫째, 시적 주제의식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이다. 주제는 시의 유기적인 총체로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적절하게 구성요소와 함께 용해되어 발현해야 한다. 시인이 시 속에 형상화시킨 중심사상이 주제이며, 상상력, 이미지, 비유와 상징 등에 비해 추상적 관념적이고 구조적인 개념인 성격을 지니지만 자아의 중심적인 인식의 검열을 거치면서 세계를 바로 보게 한다. 또한 그에 근거한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보다 정확한 자아인식을 돕는다. 주제의식은 세계에 대한 자아의 인식을 통합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통찰 기능을 수행하며 내면적 갈등을 직시하게 하는 치료효과가 있다.

  둘째, 시적 상상력이다. 상상이란 라틴어(imaginatio)에서 온 것으로, 과거에 보고 듣고 겪었던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하여 마음속에서 다시 생각해 내는 일, 즉 다시 그려보는 것을 말하며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인 내면의 힘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상하는 능력이 있어 지난날의 희로애락을 떠올린다든지,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상상 활동의 일환이다. 지적 능력과 의지, 기억과 구별되는 상상력은 심리적 환기와 용해 작용으로 작가의 무의식적 상상력을 통하여 의식화된 지적 반응인 것이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사실과 허구의 접점에서 시인의 체험과 상상력이 만나는 공간이다. 이렇게 상상력은 사물과 주체에 대해 이미지의 선명성을 확보하고 일련의 능동적인 변형을 거치게 된다. 대상의 지각과 정신 작용의 긴밀한 통합을 거친 상상력은 시인의 정신세계에서 시작하여 심리적이고 미적인 단계에 이른다.

  셋째, 시적 리듬인데, 리듬(rhythms)이란 흔히 율동, 운율 혹은 가락으로 번역된다. 리듬 안에서 사유와 정서 그리고  사회성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적인 사상이 담겨있다. 따라서 시의 반복과 열거의 리듬은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고, 안정된 정서의 회복을 가져다준다. 연과 연 사이 행과 행 사이의 한 문장 안에 유사한 단어나 어구 등을 여러 번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하고 음악적인 효과로 독자의 저항감을 줄여주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넷째, 이미지는 상상(imagination)과 어원을 같이 하며 상상력이 만들어낸 심상 또는 영상을 말한다. 어떤 체험이 구체적 감각적으로 마음속에 재생되는 상을 말하며 심상으로서 선택된 단일한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구성된 것인데 이때 결합된 이미지들을 통틀어 가리킬 때 이미저리(imagery) 즉 이미지들의 결합체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억압된 현실에서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는 양식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적 수단이다. 이미지의 표현은 현실적 소통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관계에 놓임으로 무의식적 욕구에 대한 정서의 환기와 전이가 가능해진다.

  다섯째, 비유(metaphor)와 상징(symbol)은 압축과 다양함을 통해 시적 주제와 이미지를 확장시켜준다. 본래의 사실, 사물, 상황 등을 일반적 어법에서 벗어나 이미 알고  있는 다른 것의 사실, 사물, 상황 등에 견주어 냄으로써 특수한 의미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하는 양식이다. 시인의 심상과 관념을 결합시키고 물질세계와 언어세계를 상호작용하여 언어로 표상된 심상이 어떤 다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억압된 정서를 환기시킨다. 이렇게 시치료 이론의 관점에서 비유와 상징을 활용하는 방법은 고통스런 기억을 표출하는데 용기와 효과를 준다. 이렇게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적 문제점과 시인 내면의 심리적 갈등과 고민들을 시창작의 방법적 기제들을 통하여 억압된 시인 내면의 욕구를 자극시키고, 감정을 분출함으로써 정서적인 환기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을 가능케 하는 자아를 발견하고, 그러한 자아를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시에 내장된 시창작 기구들이 가진 효과로서 시가 창작자의 억압되고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정서적 해소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감정의 극복과 정서의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5. 시창작 과정에서 기능하는 치유성

  시인은 위와 같이 주제의식, 상상력, 리듬, 이미지, 비유와 상징 등의 시창작법을 활용하여 창작에 집중하는 동안 정서적 안정과 평안을 찾는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내면에서 발휘되는 '동일화', '카타르시스', '통찰과 통합'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심리적이고 치유적으로 기능한다.

  '동일화'는 '동일시(identification)"와 '투사(projection)'의 과정으로써 시인이 경험한 행위와 감정에 몰입하여 시를 쓰면서 그 대상을 통해 자신이 지닌 어떠한 유사한 특징을 찾게 된다. 이때 시적 자아는 대상을 통해 성찰과 합일을 이루고 자기 정체성의 현주소를 찾게 된다.

  '카타르시스'는 억압된 감정을 언어로서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다. 카타르시스는 억압된 시인의 불안을 외부로 발산하여 건전하고 교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감정의 정화작용으로써 심리적 갈등을 언어적 행위를 통해 충동적 감정을 배설하여 내면의 불만과 갈등을 경감하거나 해소시킨다. 

  '통찰과 통합'은 자신이 지닌 문제와 정체성을 통찰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체득하여 미래지향적 세계와 통합된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시인은 통찰과 통합으로서 자신의 갈등을 객관화할 때, 결국 자신의 욕구를 동기화할 수 있다. 

  우리는 '동일화', '카타르시스', '통찰과 통합'으로 기능하는 치료적인 시를 시인의 정서를 드러낸 '억압의 기표'라고 부를 수 있다. 이때 기표는 의사 전달을 위한 신호이면서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을 분출시킨 증상이다. 이 증상은 시에서 나타난 기호화된 억압의 증후이며 억압을 대체하는 방법으로서 구현된 무의식의 표상이다. 시인이 체험한 상처를 무의식의 억압에서 구제하게 한다는 것은 결국 시적 도구로서 억압을 가공하고 재현하는 과정, 즉 '동일화', '카타르시스', '통찰과 통합'으로 드러날 때, 자아와 세계에 대한 '정서의 순화'와 '감정의 회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시를 창작자의 무의식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내면의 감정 보고서'이며 '심리적 고뇌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의 '대안적 치료'이며 시인의 '정화된 정서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시인은 시를 쓴다. 마치 감기약을 먹듯이. 체질에 맞게 처방한 언어라는 알약을 억압의 방에서 조제한다. '내면의 상처'를 '외면의 언어'로서 '담금질'하며 '체험한 상처'를 재현된 '시어의 알약'으로 오랫동안 썼다가 지우며  꿀꺽 꿀꺽 삼킨다. (P.12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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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시마詩魔창간호 2019. 06. <시마詩魔 /시론>에서

  * 권성훈/ 시인, 문학평론가, 2013년『작가세계』로 평론 부문 신인상 당선, 시집『유씨 목공소』외 2권,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정신분석 시인의 얼굴』『현대시 미학 산책』『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편저『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등, 고려대 연구교수 역임,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