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전순영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꽃잎처럼 내리더니 며칠째 계속 내려 지붕
도 담장도 골목도 눈밭이 되었다. 누런 개 한 마리가 대문 앞을 어
슬렁거리고 있었다. 엊그제도 녀석이 왔을 때 지나가는 개려니 하
고 못 본 척했는데 오늘도 와서 가지 않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비
쩍 마른 몸에 털은 부스스한 녀석이 며칠을 굶은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주인도 없고 집도 없어요. 배
가 고파요. 그러는 것 같았다. 녀석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우리 개
에게 주려고 만들어놓은 밥을 그릇에 담아 대문 앞에다 놓아주었
다. 녀석이 막 먹으려는데 우리 개들이 잡아먹을 듯이 짖어대는 바
람에 그 덩치 큰 누렁이는 혼비백산 달아났다. 나는 밥그릇을 들고
따라가며 누렁이를 불렀다. 그러고는 우리 개들이 보이지 않는 바
깥 담장 밑에다 밥그릇을 놓아주었다.
이튿날도 녀석이 와서 밥을 주었더니 먹고 가지 않고 주변을 맴
돌고 있었다. 저 녀석이 집이 없는가 싶었다. 남아 있던 개집이 하
나 있어 그걸 대문 앞에 내놓고 신문지로 속을 깔고 밖은 사과 박
스로 둘러놓고 이제 이 집에 들어가 자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튿날
도 그 다음날에도 녀석은 와서 밥만 먹고 갔다. 그 집에 들어가 자
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모르는 채 녀석은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문 앞에 조금만 얼씬거려도 우리 개 세 마리가 떼거지로 짖어대
서 못 오는 것 같아 대문에서 좀 더 먼 곳으로 끌어다가 양지쪽에
놓고 제 밥그릇을 놔주니 그 속에 들어가 자는 듯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되었을까, 하루는 녀석이 밤늦도록 오지 않았다.
늦은 밤에도 우리 개들이 짖으면 얼른 웃옷을 걸치고 밥그릇을 들
고 나가 누렁이를 부르다가 없음을 확인하고 들어오던 나날…….
어느새 녀석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나 보다. 우래 개들이 그놈을 물
어뜯지만 않는다면 우리 집에서 함께 살리고 싶은데, 이 추운 밤 녀
석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제 몫으로 남겨둔 밥이 그대로 있
는데……. 마음속에 누렁이를 담고 겨울이 가고 눈이 녹고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대문 앞에 누렁이가 와 있었다. 녀석은 친구를
데리고 와서 같이 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대문 앞에 또 누렁
이가 와 있었다. 그때는 그 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잇었다. 나는 싱
긋 웃으면서 돌아서며 이제 누렁이를 잊기로 했다. 겨울이 와도 녀
석이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친구가 생겼으니까.
*에세이집 『너에게 물들다』에서/ 2011.9.21 <책만드는집>펴냄
*전순영/ 전남 나주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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