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의 스승은 시 자체,
그리고 고독과 책이었다
정숙자
그동안 너무 많이 다치고 인내하며 살아왔다. ‘그동안’이라는 세 음절 속에는 거의 평생이라는 공간이 들어있다. 태어나기 이전이야 현재의식으로 짚어낼 수 없지만, 현생인류의 한 개체로서 첫 울음을 터트린 후 줄곧 다침-견딤-겪음의 시간을 더듬어온 것으로 회상된다. 매번의 그 상처들이 모멸이나 모독인 줄도 모르고 나는 늘 자신 안에서 모순을 찾으려 했으며, 그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최선의 순응-적응-호응을 위해 숨죽여 왔던 것이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암울한 고독감 속에서 탐독만이 화려했다. 느릿느릿 읽은 한권 한권이 집안에 꽂혀가는 든든함만이 내 겨울을 녹여주는 페치카였다. 부실한 청력과 허술한 IQ와 함께 했지만, 나는 어느 한순간도 위축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까닭인즉 당대의 문호들과 끊임없이 사귀었으며, 그들은 나의 현실에 진정어린 격려와 위로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하여 내 정신은 어떤 오지에서도 청명한 아침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의 유토피아란 그런 것이었다. 팍팍한 순간들이 디스토피아에, 또는 미궁에 머무를 때 책이야말로 유일무이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였다. 스승이었고 동료이자 종교였다. 아무리 친해져도 배신하지 않고, 아무리 멀리 놔둬도 토라지지 않을 뿐더러 마치 “태평양이 밀려와도 끄떡없는 산”(졸시「무인도」)처럼 내 집 어느 구석에서든 시간을 함께해주었다.
수십 년 전, 읽은 후 그저 꽂아둔 책, 책들…… 어쩌다 자료를 찾으려고 펼쳤을 때,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둔 날짜와 시간과 내 이름을 대할 때, 그 뭉클한 감동을 어디에 견줄 수 있으랴. 체중이 가벼워진 그를 가슴에 안고 좁은 실내를 이리저리 거닐어볼 뿐. ‘그대가 있어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생각들……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막막했던 처지와 슬픔들을 다독다독 어루만져주었던 책, 책들. 어듬더듬 뭘 알고 읽었을까만 아우구스티누스의 『미학』을 위시하여 동서고금에 남겨진 철학‧문학‧경전들과 도덕적 사고에 도움이 된 중국의 고전들과 이국의 동화책들…….
이제 와서야 들뢰즈, 지젝, 라캉, 벤야민 등도 알아가지만, 그때! 그 젊을 때! 고전을 읽어두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책은 학문과 지식의 SRT이며 승차권이라는 게 분명하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분별력/판단력/상상력이다. 그것은 미래의 AI라 해도 한 인간에게 단박에 선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중량미를 가늠할 만한 사고와 표현의 결과란 순전히 자신의 무의식(id)에 저장된 각양각색의 의지와 의식의 산출이기 때문이다. 학문적 지식이라면 컴퓨터 화면의 검색창만 두드려도 어지간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라고 일컫는 수천수만의 고원에서도 건질 수 없는 게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분별력/판단력/상상력이 아닌가.
언제 어디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굽이굽이 엄습하는 고통을 어떻게 순화-정화- 승화시켜왔느냐에 따라 무의식은 침향과도 같은 아우라를 초자아(superego)에게 때때로 떠올려준다.
비탈이냐? 궁전이냐? 어디에 태어났느냐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출생지가 어디든 주어진 숙명과 운명 안에서 진선미를 건져내면 된다고 본다. 단 한번, 단 하나뿐인 나 자신의 삶…… 그것의 총점은 쉽사리 매겨지지 않는다. 세간의 잣대를 넘어서는 스스로의 긍지와 염원을 쥐고 이성적 사유와 실천을 병행하는 방법만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리라.
나 자신은 나 자신을 노리는 또 한 마리의 사자이며, 나 자신은 나 자신을 수호하는 또 한 마리의 사자이며, 나 자신은 나 자신을 감시하는 또 한 마리의 사자이다. 결국 이 세 마리의 사자는 나 자신의 정신일 것이다.
돌멩이 하나를 망치로 내리쳐 보라. 얼마나 여러 개의 돌멩이가 살아서 튀어 나오는가. 하나의 돌멩이도 그와 같이 많은 입자들의 결정이거니와, 하물며 지능을 가진 인간이야 얼마나 단단한 억 조 경의 생각과, 행위와, 꿈을 버무려야 제 그림자에 값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속에는 선대의 축복과 기대가 깃들어 있음이니, 그 축복과 기대에 대한 감사와 보답으로라도 우리는 최선의 삶을 이 땅에 바치고 가야 할 것이다.
시의 품은 넓다. 바다보다도 깊고 하늘보다도 둥글며 강보다도 유연하고 유장하다. 시가 수용하지 못할 시공이란 없다. 성인의 게송에서부터 전위대의 시, 동시, 연애시, 서사시, 전쟁시, 종교시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여 시세계는 다양한 상상력과 리얼리즘과 풍크툼으로 일초일순 명멸한다. 다름과 다름, 새로움과 새로움이 얽히거나 부딪지도 않고 백지 위의 별자리로 솟구치고 떠내려간다.
고구려의 『황조가』에서부터 영시의 고대와 중세를 잇는『베오울프』,『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김해경과 서정주에 이르기까지 시의 스펙트럼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다채롭게 펼쳐져 왔다. 그렇게 끊임없이 인류의 꿈과 애환을 불사른 무덤들…… 그들은 흙에서와 마찬가지로 벼루와 설화지 위에서 호흡하고 사라지고 잊혀져갔다. 그 처연하고 찬란한 은하계의 외곽에서,
나에게는 처음부터 지금토록 고독과 책이 스승이었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스승님과 선후배와 몇몇 외우가 계셨음을…… 홀로이 창밖을 바라보며 헤아려 보는 지금은 2019년 1월 8일 해질녘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천수천안의 눈과 손길은 저 세상에 가서도 기억될 것이다. 그 은혜를 어찌 다 잊을 수 있으며 갚을 수 있으며 하늘에 새기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제 이 원고의 마지막에 이르러 요약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독을 잃어버리는 것은 작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고독을 원망하는 것은 사유의 진입로를 원망하는 것이며, 고독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머나먼 곳에서 내려 보낸 영감과 인식의 겉껍질을 다듬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고독은 내 필생의 교과서이자 사전이었고 끝내 순응-적응-호응해야만 될 비운이(었)다. 그러므로 고독은 내 인생의 최대 적수이며 맞수(였)다. 그를 벗 삼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적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독은 모순에서 비롯되고, 모순은 갈등을 야기하며, 갈등은 백색광의 이면이 아닐까.
어느 쪽에서 재어도 나의 노정은 이제 반지름을 훨씬 지났다. 도입부에서 '그동안'이라고 피력한 것보다는 한 음절 많은 '남은동안'이라는 표현을 써야 될 지점인 것 같다. 우뚝 솟아오르거나 푹 꼬꾸라진 적 없이 여태 서 있을 수 있었던 과정 모두가 시 자체와 책과 고독의 덕택이었다. 비탈에 뿌려져 '문인목'이 되어가는 일 또한 영예롭지 아니한가. 때로는 홀로 젖고, 흔히는 어두웠으나 잠시라도 얼어붙은 고독이 녹아내릴라치면 "고독양식장"(졸시「진무한」)을 만들어서라도 독서와 시에 열중하고자 했던 나 자신에게…… 세 마리의 사자에게……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조용조용히 갈기를 쓰다듬으며, 그러구러 일상적으로 만나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곁에서 나는 오늘도 책과 시와 함께 출렁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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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반시』 2019-봄호 <기획 2 |내 시의 스승>에서
* 정숙자/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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