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이채민_명작의 자리/ 초원의 빛 : 윌리엄 워즈워스

검지 정숙자 2018. 11. 7. 00:09

 

 

<『월간문학』2018-11월호 / 명작의 자리>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80세)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향한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재회, 그리고 또다시 이별 후, 여주인공 나탈리우드가 낭송하며 더 유명해진 초원의 빛, 싯구를 읊조리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영국의 북부 라이달 마운트 산악 풍경을 구경하는 사이에 버스는 그래스미어에 도착했다. 오는 곳곳에 안내 표시판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고풍스런 시인의 생가, 하얀 도브 코티지(평화로운 작은 집들)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유월의 짙푸름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문으로 들어서니 워즈워스와 도로시가 200년의 세월을 건너와 반겨줄 것만 같았다.

  윌리엄 워즈워스는(1770~1850)는 영국 북부지방의 호수 지역 코커머스에서 태어났다.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간다. 그곳에 체류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지만 혁명이 점차 과격화되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까지 겹치게 되자 그는 자기가 믿고 있던 정치철학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1799년 누이동생 도로시와 함께 그래스미어 호반으로 돌아와 도브 코티지에서 살게 된다. 여기서 메리 허친슨과 결혼을 하고 시인으로서 '위대한 10년'(1796~1806)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수선화」「초원의 빛」「무지개」등 그의 걸작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쓰여졌다. 그리고 이 시기에 시인 콜리지는 워즈워스의 작품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두 사람은 합작 시집 『서정시집』을 출판하게 되는데 워즈워스는 이 서정시집 서문에서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감정의 발로만이 가장 진실된 것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언어야말로 시에 가장 알맞은 언어'라고 하면서, 18세기 정시의 기초를 수립하고 영국왕실에서 인정하는 계관시인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다. 1805년에 완성된 자전적 서사시 「서곡」은 그의 최대 역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소년 시대로부터 대혁명 시대의 프랑스 체제에 이르는 자기의 내적 성장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낭만파 문학사의 한 지평을 열었던 시인 워즈워스는 고독했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나무 그리고 수선화가 만발한 자연 속에서 행복했다고 젊은 날의 그의 초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림 같은 도브 코티지 1층에는 그의 가족들이 식사를 하던 식탁과 식기들이 가지런했고 음식 준비를 맡았던 도로시의 작은 주방이 있었다. 침실로 사용했던 2층에는 그가 잠들었던 침대 위에 벗어놓은 옷가지가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를 썼던 책상 앞에서 그가 남긴 육필을 마주했을 때 벅차오르던 그 순간의 감정을 짧은 지면에 다 옮겨 놓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도로시가 가꾸었을 뒷마당은 풀과 수선화가 가득 피었고 시를 적어놓은 석판들이 눈길을 끌었다. 뒷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유월의 호수와 숲은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를 노래한 것이리라. <이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