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박설희_상상공화국 그리고 상생공화국(발췌)/ 삶과 4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7. 10. 14:37

 

 

    삶과 4

 

   정숙자

 

 

  죽기는 4가 죽었는데

  울기는 왜 3이 하느냐

 

  마땅히 4가 죽었으므로 4가 슬프고

  울기도 4가 해야 옳지 않은가

  거울 앞에 선 4에게

  마땅히 나타나야 할 4가 보이지 않으므로

  아아 내가 죽었구나, 하고 비로소 울고 싶은데

  엉뚱하게도 제 얼굴을 선명히 바라보는

  눈으로 왜 3이 우느냐

 

  그렇구나. 제 삶과 제 표정을 잃어버려 제 죽음을 깨달은 '4'가

펑펑, 혹은 소리 없이 친구나 아내 자식에게 의탁해 우는 것이었

구나. 4에게 애정 깊은 3만이 자꾸자꾸 눈물 흘리는 까닭이 바로

그런 내막이었구나. 4가 제 삶과 제 얼굴이 그리울 때마다 똑같

은 이유를, 사랑하는 3에게 전달   , 대신 울고야 마는 것이었구

나.

 

  양치질하다가   , 거품 헹구다가 거울을 보며 쏟는 울음도 그

거울 속에서 양치 중인 3이 우는 게 아니라, 그 거울 속 (보이지

않는) 4가 3으로 하여금 우는 것이었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대신 울어줄 3이 아직 남아 있어

  대신 울어줄 3들이 아직 여기 살아있어

  4도 3들도 이따금 젖고 있어

   -전문, 『시인동네』 2018-5월호

 

 

   ▶ 상상공화국 그리고 상생공화국(발췌)_ 박설희

  나는 상상공화국의 주민이며 정서가 담긴 언어로 상상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상상계의 고수 중 한 명은 자신이 동어 반복을 하기 시작했다고 괴로워하더니 시집 세 권이면 일평생의 상상이 다 담겨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이제 됐다'고 했다. 뭐가 됐다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나는 그의 고민과 괴로움이 그대로 느껴져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동어 반복은 상상공화국 주민들이 해서는 안 될 불문율 같은 것인데 시집을 이삼 년 만에 한 권씩 꼭 내야 하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주민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며 자기가 동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책 발간 횟수가 많을수록 권위가 선다는 환상이 이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공화국에서는 상상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새로운 상상이면 무조건 좋은 것, 어떤 엽기나 패륜이라도 그 안에 논리적 필연성만 있으면 다들 수긍을 한다.

  상상의 최고 고수는 대다수 주민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상상을 잘 하는 비법과 그 상상의 내용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타고난 자질과 끝없이 자신을 밀어붙이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 상상 공화국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인간 세계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다 벌어진다. 다만 그것이 주로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상상공화국의 파워 게임은 지면으로 이루어지며 무기도 당연히 언어를 개발한 것이다. 예를 들면 레이저보다도 더 강렬한 전광석화 촌평, 눈총과 함께 쏘면 더 치명적이 될 독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상에 대한 촌철살인 비평 등이 그것이다. 때때로 언어로 싸우는 데 한계를 느끼면 몸을 동원한 물리적 싸움이 시작되나 일반인들의 경우보다는 강도가 휠씬 약한 편이다.

  주민들은 대체로 예민하고 섬세하여 문장과 구절, 조사 하나를 가지고도 밤을 새며 글을 다듬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예전에는 밤새 술을 마시고 기행을 벌이는 주민들이 많았다고 하나 지금은 모여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고 상상을 전수하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다음날을 위하여 수다를 자제하기도 한다.

  또한 대다수는 온순하지만 역린을 언어로 잘못 건드리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긴다. 그러니까 자신의 상상과 언어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모욕당했다고 느낄 경우 전 존재를 던져 상대방과 맞서 싸운다. 그럴 때엔 아무도 말리지 못하며 자신만이 진정시킬 수가 있다. 그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들의 좌우명은 '질투는 나의 힘'이며 질투의 강도에 따라 없던 상상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긍정적인 현상이 생기거나 남의 언어를 훔쳐오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p.225-226)

 

   (……)

 

  새로운 언어 발굴자를 찾아내는 임무를 띤 사람들은  '삶과 4'라는, 문자와 숫자가 나란히 놓인 이질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이 시에서 삶과 사(死)가 연상되고 4.3같은 4월의 희생자들이 떠오르기도 하며 우리들의 울음이 질긴 까닭이 납득되기도 한다며 의미 부여를 하며 만족해 한다.

  그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시를 골라내어 거기에 자신의 언어를 보태어 보다 읽음직스럽게 진열해 놓는다. 거기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시를 골라내어 거기에 자신의 언어로 양념을 뿌리는 것이다.

  상상공화국에서는 우수한 주민들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좋은 작품을 썼을 때 바로 상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지 일 년이나 십 년 뒤에, 심지어는 사후에 상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게 상을 주는 경우가 많아 문학상이 아니라 공로상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유명한 어느 상 위원회에서는 살아있는 주민들에게만 상을 주기로 했는데 그 때문에 요절한 주민들은 아예 수상자에서 제외되어 그 상의 권위를 의심하는 주민들도 꽤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 파문으로 종신위원들이 집단으로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올해 문학상 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상금이 많은 경우 누가 받을지에 대해 내기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후보자 열 명 중, 학연 지연 등단지 등을 고려해 그 해 수상자 한 명을 족집게처럼 딱 집어내는 걸 눈앞에서 본 적도 있다. 개봉박두, 기대해보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데 과연 일주일 수 바로 그 인물이 수상자로  발표되는 것이었다. 그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 분석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만큼 잡음이 많은 게 없어서 다른 상 다 물리치고 밥상 받는 게 제일 좋다고 너스레를 떠는 주민도 있다. 어떤 상은 받을까 말까 고민하며 받는데 받는 순간 찬양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에 관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심사를 하는데 자신의 감과 눈이 미덥지 않아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대형 출판사의 아우라에 기대어 상을 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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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문화』 2018-여름호 <이 계절의 시>에서

  * 박설희/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