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결빙 너머/ 조연향

검지 정숙자 2018. 6. 13. 01:35

 

 

    결빙 너머

 

     조연향

 

 

   물결로써 꽃 피우려면 꽝꽝 얼어붙어야 하는지 흐르던 강물이 숨을 멈추었다 앙상한 뼈만을 드러낸 채 강철처럼 단단한 평면 위로 한 세계가 정지되어가고 있다 흐르면서도 얼고 얼면서 흘러가는 물, 쩡쩡 심호흡을 한다 심호흡 속에 한밤이 하얗게 식어가고 있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저 신생대의 울음소리 언제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 얼음을 깨던 과거의 기억이 있었다는 것을 깨치듯 쩌엉 운다 바람이 이곳을 딛고 저곳으로 건너가고 있다 얼어붙는다고 누구에게나 빙하기라고 할 수 있나

 

  저토록 고요하고 희미한 빛을 빚어낼 수 있을까 새가 날아가다 멈춰 있는 것처럼 한밤중 소리치면서 의식을 버리는 강물의 환을 보았다

 

  얼음 구덩이를 헤치며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청둥오리, 그 몸에 온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의 순간인가 건너가 보지 못한 빙하의 자리 잠시 얼어붙는 듯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강물처럼 단단한 평면 위로 한 세계가 정지"된 바로 그 순간은, 흐르면서도 얼고 얼면서도 흘러가는 물이 쩡쩡 심호흡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저 신생대의 울음소리"는 빙하기의 실재를 증언하기도 하는데, 그 증언과 함께 시인은 "새가 날아가다 멈춰 있는 것처럼 한밤중 꽝꽝 소리치면서 의식을 버리는 강물의 환을 응시하게 된다. 이 '실재'와 '환상'의 순간적 결속이야말로 우리 몸 속에 "온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의 순간인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

  * 시집『토네이토 딸기』에서/ 2018. 5. 25. <서정시학> 펴냄

  * 조연향/ 경북 영천 출생, 1994년 《경남신문》신춘문예 · 200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제1초소, 새들 날아가다』『오목눈숲새 이야기』, 저서 『김소월 백석 연구』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들의 해변/ 류미야  (0) 2018.06.20
노을 밀어 넣기/ 조연향  (0) 2018.06.13
일간지 사회면을 넘기며/ 이령  (0) 2018.06.06
토르소/ 이령  (0) 2018.06.06
꿈꾸는 시인 정도전/ 최서림  (0) 201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