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삶과 4/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5. 5. 02:58

 

    삶과 4

     - 미망인

 

     정숙자

 

 

  죽기는 4가 죽었는데

  울기는 왜 3이 하느냐

   

  마땅히 4가 죽었으므로 4가 슬프고

  울기도 4가 해야 옳지 않은가

  거울 앞에 선 4에게

  마땅히 나타나야 할 4가 보이지 않으므로

  아아 내가 죽었구나, 하고 비로소 울고 싶은데

  엉뚱하게도 제 얼굴을 선명히 바라보는

  눈으로 왜 3이 우느냐

 

  그렇구나, 제 삶과 제 표정을 잃어버려 제 죽음을 깨달은 '4'가 펑펑, 혹은 소리 없이 친구나 아내 자식에게 의탁해 우는 것이었구나. 4에게 애정 깊은 3만이 자꾸자꾸 눈물 흘리는 까닭이 바로 그런 내막이었구나. 4가 제 삶과 제 얼굴이 그리울 때마다 똑같은 이유를, 사랑하는 3에게 전달    , 대신 울고야 마는 것이었구나.

 

  양치질하다가    , 거품 헹구다가 거울을 보며 쏟는 울음도 그 거울 속에서 계속 양치 중인 3이 우는 게 아니라, 그 거울 속(보이지 않는) 4가 우는 것이었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대신 울어줄 3이 아직 남아 있어

  대신 울어줄 3들이 아직 여기 살아있어

  4도 3도 3들도 이따금 젖고 있어

    - 시인동네』2018-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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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3부/ p. 84-85)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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