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토지세 자진납부/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5. 3. 02:47

 

 

    토지세 자진납부

 

    정숙자

 

 

  민들레꽃 얼비친 얼굴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오늘, 마감일을 놓치면 안되는 거다

  이 땅에 뿌리내린 풀뿌리치고

  토지세! 비껴 설 줄이 있던가?

  우린 네 식구에 스물두어 평

  한앞에 5평 남짓 지구를 그리어 가진 셈이다

  십몇만 몇천몇백 원

  팡팡팡 수납인 찍히는 소리와 함께

  햇빛 같은, 모래알 같은, 흘리지 않은 눈물 같은

  거스름 동전들이 주머니 안에서 나를 만진다

  어제, 그제, 요 며칠 사이

  진달래 · 개나리 · 벚꽃 · 나순개 · 앵두나무도

  제 터수에 꼭 맞는 토지세를 내고들 섰다

  노랑 · 분홍 · 하양 · 보라 · 빨강

  구름장 몽땅 풀려버리게 이마를 묻고 울고 싶던 날

  벙어리저금통에 툼벙툼벙 던져 넣은 말

  짐승들의 피 같은, 숨결 같은, 눈 같은 꽃들

  벽돌담,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성심성의

  납부기한 어찌 알았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름은 한 두름 식물일 수밖에 없다

  애써 얻은 사랑이든, 고요든, 웃음소리든

  지로용지 보이면 기한 내 자진납부

  그리고 또 눈보라의 희디흰 이빨 속에서

  다음 꽃 공그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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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학회 시제》2000년 6월

   * 정숙자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이 화려한 침묵』『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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