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공중에서 주소를 찾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5. 23. 11:26

 

 

    공중에서 주소를 찾다

 

    정숙자

 

 

  구름 한 점 풀린다

  여기저기 묻혀 있던 풀씨들이 쑥쑥 자라

  천수천안 가득히 햇살을 끌어들인다

 

  봄 여름, 어른과 아이, 색색깔 상여와 흰 상여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또 나부끼고

  휘파람 한 오리 꺾어 날리며

  자전거와 청년과 비뚜로 쓴 밀짚모자가 바람 순한

  언덕을 미끄러진다

 

  산으로 흐른 유년의 온갖 지느러미들

  방죽 물에 꾸깃꾸깃 메모리 되고

  그 시절 간절히 그리운 이는 먼 길 돌아와서는

  풍덩! 더없이 먼 길을 뜨기도 한다

 

  무엇에 쫓겨 여태도 너는 밖으로 돌며 탔단 말인가?

 

  삼사십 년 저 너머에서 '쌔앵' 돌멩이가

  날아와 팔매 꽂힌다

  어느 누구의 발길이라도

  둥그렇게- 둥그렇게- 두웅- 그렇게-

  어루만지는 물신선의 정오의 긍정 앞에서

 

  네 원은 지름이 너무 길었나 보다

  둥그렇게- 둥그렇게- 두웅- 그렇게- 손사래 치며

  오랜 꿈 고리 벗겨 평장하면서

  

     ------------

  * 《공간시 낭송》 2000년 4월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그리워서』 『이 화려한 침묵』『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

'내 품에 남은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주/ 정숙자  (0) 2019.01.01
어느 아름다운 날/ 정숙자  (0) 2018.09.25
토지세 자진납부/ 정숙자  (0) 2018.05.03
병(甁)/ 정숙자  (0) 2018.04.30
첫 번째 뱀의 기억/ 정숙자  (0) 2018.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