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첫 번째 뱀의 기억/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4. 26. 12:07

 

 

    첫 번째 뱀의 기억

 

    정숙자

 

 

  학교가 도시락 거리는 아니었다. 언제라도

  집점심 먹고 다시금 걸어서 학교로 갔다

 

  밀 이삭 비벼서 후후 까먹고

  겨울이면 생고구마 한입씩 베물어 발라먹고는

  끼짓 껍질이야 제기차기로 날려버리며

  매양 혼자서 학교로 갔다

 

  우리집은 전설같이 따뜻한 동네 끄트머리 집

  숲과 무덤과 새소리 푸른 황톳집

  노랫말도 깽뚱하게 고쳐 부르며

  사뿐사뿐 학교로 갔다

 

  왕골풀꽃, 보리잠자리, 무너지는 털구름토끼

  그 날도 나는 비석날 넘어 밭두둑길 가고 있었지

 

  땡볕 퍼붓고 잡풀들 막 자라 훈둣했는데*

  니은字로 일어선 뱀 한 마리가

  쓰으윽 나타나 내 눈에 꽂혀

  숨도 못 쉬고

  냅다 냅다 뛰었네   

  불길로 내리달리며 휘뜩 돌아봤을 때

  그때도 놈은 시퍼렇게 날 쫓고 있더군

 

  그러나 그쯤은 병풍 속 병아리였어

  나이 보탤수록 놈보다 섬뜩한 놈

  직립 보행하는 긴즘생 도처에서 맞닥뜨렸네

  세상은 어디라없이 칙칙한 꿀척* 아닌가?

 

  "안녕?" 손도 잡으며 이제사 곧잘 웃지만

  오래도록 나는 잠을 못 잤지

  그렇지만 그런 옹이도 패옥 같은 이력이란다

  그만큼 풋풋했던 나, 무구한 하늘 거기 있으니-

    -전문-   

 

   * 훈둣하다: 무성하게 자란 풀 따위를 이르는 전북 김제 지방의 사투리

   * 꿀척: 매우 구석진 곳을 일컫는 전북 김제 지방의 사투리

 

    ------------

  *『현대시』1999년 4월호

  * 정숙자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이 화려한 침묵』『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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