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시가 이겼다고 말했던 날, 그리고/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8. 4. 3. 00:31

 

 

    시가 이겼다고 말했던 날, 그리고

 

    정숙자 시인

 

 

  대전 국립현충원 장교 제1묘역에 비석 한 기를 세운 2012년 10월 29일. 그 붉디붉은 만추로부터 이어진 겨울은 느닷없이 맞닥뜨린 광야의 폭풍과 다를 바 없었다. 이를테면 꿈속에서조차 상상한 적 없는 비현실적 현실이 그해 겨울을 이중의 한파로 덮쳐버렸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캡틴이 된 나는 좀 더 이성적인 선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휘청거리는 감정이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나 누릴 수 있는 사치의 일종. 슬픔을 슬프다고 말할 때는 아직 덜 슬플 때라는 걸 그때 알았다. 걸핏하면 센티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설 슬픈 때였던가! 결국 나는 이성과 감성, 오성 속에서 ‘슬픔’이라는 정서를 영구 추방했다. 입에 담지 않았고, 가슴에 품지 않았으며, 그 부근을 배회하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와 달은 어김없이 굴러 다섯 여섯 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지만 사월이 돌아왔다. 몇 달 동안 봉투도 뜯지 못하고 받아둔 시집들을 차례로 읽고, 그에 대한 회답을 쓰는 데 전념했던 봄, 지금 일기장을 들추니 하루에 서너 통씩 편지를 쓴 것으로 적혀 있다. 두문불출, 그렇게 시인으로서, 또는 자신에 대한 임무 수행자로서 규칙을 재개할 무렵, 이채민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힘드실 텐데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미네르바』시 창작 교실에 강의를 초청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뒤적거렸다. 일시적 근신일 뿐 문단에 발을 막으려는 바도 아니었기에오히려 그 배려가 안온했다. 겨울 이후 그 일정이 나의 특별한 외출이자 첫 외출이었다. 

  당일(2013.4.25.목.) 강의에 앞서 이채민 시인의 강사 소개가 있었다. 역시나 “어려운 가운데 강의를 수락”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을 곁들였으므로 여느 때와는 좀 다른,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어 내 순서가 되었다. ‘시 이론’과 ‘저의 삶’ 중 어느 쪽을 듣고 싶은지 모인 분들의 의견을 타진했다. 결과는 거의 만장일치로 후자였다. 시에 관한 내용이야 다른 분한테서도 많이 들었거나 들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뜻을 선뜻 수용! 나는 중학 1학년 때 스스로 컷까지 그려가며 만든 시집 『문집 1』을 들어 보이며(자료로 가지고 갔음) 내 인생에서 시의 출발이 언제였는지를 공개했다. 그리고는 “시가 이겼습니다. 저와 시 사이에 끼어들었던 자식도 결혼하여 나갔고, 남편마저 저에게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다시 한 번 말해진 날

  그날,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푼수 없이 좀 울먹거렸던 것 같다. 모두들 푹 빠졌지만, 시 강의를 몽땅 빼먹을 순 없어 예정 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초과되고 말았다. 그래도 한마음으로 어울려 식사하고 헤어졌는데, 다시 또 속절없는 시간이 둥~ 둥~ 둥~ 흘러 그해 『미네르바』송년모임(2013.11.22.금.)이 다가왔고, 이제 근신을 풀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한 해의 마지막 꽃인 신인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무심히 박수를 치고 앉아있던 내 귀에 이런 수상소감 한 줄기가 들려왔다.

  “어느 시인께서 당신의 인생에서 시가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시가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겠습니다.”

  바로 김밝은 시인이었다.

  세상인심이란 대개 더 높은 곳을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밝은 시인은 뜨르르한 횃불을 들어 올리지 아니하고, 등잔불이나 촛불 한 자루에 지나지 않는 이의 말을, 자신의 문학 인생 첫머리에 되새겼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김밝은 시인이 지난봄에 내 강의를 들었던 한 분임을 알았고, 내 쪽에서 더 크게 배우고 사유한 바 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이채민 시인이 그때 왜 나를 초청했는지 어렴풋 느껴진다. 집안에 틀어박힌 내 어두운 봄날이 안타까웠던 것이었음을. 이렇게 실천으로 데워가는 문심文心과 문우들이 곁에 있어 난세라는 오늘도 우리는, 조금은 따뜻하지 아니한가. 늦었지만 이채민 시인의 우정에 감사하며, 박수만 치고 말았던 김밝은 시인의 등단작 한 편을 다시 읽는다.

 

 

    핸드폰에서 살다가

 

    김밝은

 

 

  그대를 찾을 수가 없다

 

  미궁의 언덕을 넘어가던 연기마저 숨죽이는,

  후박나무 생각 깊어진 봄날

 

  수많은 골목들을 찾아 헤매도

  이름마저 행방불명되어 버렸다

 

  열한 개의 숫자로 새겨진 얼굴

  초록 잎들마저 침묵하던 오월 어느 하루

  그대가 생의 나침반을 떨어트렸을 때

  함께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끔 나의 새벽으로

  눈물 같은 미소를 거느리고 찾아와

  몇 가지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잊어버린 비밀번호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한 잔의 카라멜마끼아또 같던 그대,

  가벼운 몸짓으로 이승의 어느 길목을 빠져나갔는지

  호젓한 숲길 사이 박새 드나드는 소리

 

  오늘은

  조각나버린 기억 저 너머

  가릉빈가 날갯짓하는 구릉 위를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전문, 시집『술의 미학』, 2017,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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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8-4월호 <목동살롱 2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