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마광수(1951-2017, 66세)
가을이 우리를 휩싸 안았다
가을이 우리를 절망케 하고
가을이 우리를 사랑에 미쳐 날뛰게 했다
누군가 염세자살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를 먹고 있는 가을
누군가 자실미수로 살아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 복용으로 잡혀 가고 있는 가을
그 가을에 우리는 만났고
그 가을에 우리는 밤새도록 울었다
더 큰 오르가슴에 대한 가슴 시린 안타까움으로
더 근사한 죽음에 대한 깊디깊은 갈증으로
-전문-
▶ "자살이 아니라 고독사였다"(발췌)_이관일(시인)
쉬운 시어 詩語로 빛나는 은유를 만들었고 '저항시인'보다는 '사랑의 시인'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던 마광수 시인은 지난 해 화제가 되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보고난 후 언론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실망했다. 윤동주의 비애를 상기시켜주긴 했다. 끝날 때 눈물 한두 방울은 나왔다. 윤동주 역(강하늘)이 시 낭송을 아주 잘했다. 일본말 외우느라고 고생도 많았을 거다. 근데 너무 저예산으로 찍었다. 윤동주가 경성 시내 다방도 많이 갔고, 헌 책방 순례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장면이 하나도 안 나온다. 동경 거리 장면에선 거리는 안 나오고 전차만 나온다. 그마저 너무 조악하다. 더구나 연희전문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약간(?)의 애교심愛校心도 나타냈다./ 그러면서 영화 「동주」에는 역사와 사회, 인간 윤동주 등은 잘 표현됐지만 문학적 고찰은 너무 부족했다며 아쉬워했다.
에필로그
1992년 『즐거운 사라』로 재판을 받을 때, 판결을 내린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판사의 판결은 비웃음이 되지 않고 있다. 성관계를 영어로 표현하면 고상하고,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저속하다는 천박한 지식층들의 사고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광수 시인은 구순을 넘긴 모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서울 용산 자택에서 어머니 수발을 든 효자였다. 모친은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연세대학교 제자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마 교수님은 그 흔한 여학생과의 이상한 소문 한 번 없었어요. 강의는 너무 재미있어 도강이 너무 많아 막상 같은 과 학생들의 의자가 부족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왜 이런 평가를 들어야 하나요?"/ 친구 이목일 화백은 마 시인의 사망 후 어느 매체에 "광수는 외설 논란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았다"면서 "세상의 따가운 눈총에 죽을 때까지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았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 화백은 "광수는 야한 글을 써서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을 날리려는 '속물'도 아니었다"면서 "내가 본 광수는 의리가 깊고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가득한 효자였다"고 말했다./ 한때는 문단의 천재였다. 그리고 또 한때는 문단의 패륜아로 평가받았던 마광수 시인 교수. 그러나 분명 중요한 사실은 그가 '천재'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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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시詩』2017-12월호 <memories>에서
* 이관일/ 시인, 본지 편집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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