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정보영_자선친필 시고/ 또 태초(太初)의 아츰 : 윤동주

검지 정숙자 2018. 2. 17. 00:00

 

 

    또 태초太初의 아츰

 

    윤동주(1917-1945, 28세)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전문, 1941. 5. 31.

 

 

  끊임없는 아침, 치열한 실존(발췌)_ 정보영

  세계에 던져진 우리는 매일같이 아침을 맞이한다. 어김없이 해는 지고, 우리는 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삶의 지속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원론적이지만 '나'의 실존에 대한 명제는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이데거는 일상 속 은폐되어 있던 '나'의 존재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드러나는 순간 실존의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고 한다. 윤동주에게 그것은 '하얗게 눈이 덮'인 어느 평범한 날 찾아온 것이다.

  소식을 전해오는 기둥인 '전신주가 잉잉' 우는 소리로 하여금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된다. 보통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소리 속에 나타난 그 말씀에 윤동주는 '무슨 계시'인지, 자신에게 되묻는다. 귀 기울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빨리/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앞서 전신주로 말미암아 존재를 의식하는 존재자인 윤동주는 '빛'의 현전, 즉 개인과 동시에 피안의 순간을 맞이한다. 세계에 대한 지각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世界-內-存在'하는 현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나'라는 주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때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나'를 다시금 성찰하게 된 윤동주는 이제 시대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위해 나아가고자 하며, 생활 속에서 그 끈을 놓치지 않고 팽팽하게 잡아두고자 한다.('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아침은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는 것과 같은 매순간이므로, 그에게 매일 아침은 귀하지 않을 수 없다. '수고'와 나의 '땀'은 자기 성찰과 더불어 자기와의 대결에서 지지 않기 위한 다짐일 것이며, 그것이 느슨해지는 것은 곧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쯤해서 윤동주의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 어떤 삶을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가.'

  그를 통해 우리는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개인화되고 감옥과 같은 우리의 삶, 끝없이 가중되는 우리의 불안 속에서 시인 윤동주는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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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8-봄호 <기획연재_ 윤동주 시인 > 에서

  * 정보영/ 한양대 국문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