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대 캐릭터
정숙자
다른 해변에 도착해버리고 만다
하루는 물론 일 년, 1분, 일생까지도
아무리 갈고 닦고 쌓으려 해도 시간은 봉인된 채 제 갈 곳으로만 저벅저벅 흐른다
운명을 쥔 그 어깨 보고 나서는 출구 없는 광야가 가로놓여도 궁금한 것조차 없다
성자들
그들이
집필하지 않은 이유가 어렴풋 드러난다
* *
까도 까도··· 알맹이가 없다고 껍질뿐이라고들 투덜대지만
洋, 파!
그 행성의 원주율과 깨끗한 위도가 요즈막엔 얼마나 든든한지 고마운지. 울퉁불퉁하지 않고 글썽글썽하지도 않고 지구를 쏙 뺀 둥긂과 흙색의 겉껍질과 칼날 없는 칼자루 빼어들고 햇빛 수호하는 이파리들과
* *
파도 파도··· 흙뿐이라고 대지를 탓한 적 있었던가?
지층, 누가 그에게 감히 까도 까도 껍질이라고 '속았다'고 힐난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겹을 난도질해도 다시 한 겹 웃어주는 그 깊은 동심원이 곧 우리가 한세월 파종하고 가꾸고 기다려온 얼굴 아니었던가
너무 빠르거나 흐려지는 시계 아래서
떠밀리는 낙엽과 파도
쉬어갈 곳 못 찾은 바람소리 횡야설수야설 배회하는 밤
- 『시산맥』2018-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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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4부/ p. 124-125)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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