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정면으로) 서 있는 자
정숙자
도플갱어와 마주치면 죽는다, 는
썰이 횡행한다
하지만 도플갱어를 어디서 만날 수 있나
때론 그를 보고 싶었고
딴은 맞닥뜨릴까 봐 무섭기도 했고
또 때로는 그를 만났는데도 내가 (혹은) 서로 못 알아보고 넘어간 건 아닐까, 호흡을 가다듬기도 했다.
그건 어느 신비주의자가 내건 그림이 아닐까
그런 허구가 온전한 줄기로서 이토록 세상에 너울거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제 그가 어디 사는지··· 어느 때 마주치게 되는지··· 그와 정식으로 마주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실까지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심증도 어렴풋 만져진다. 출구 없는 자신을 만났을 때, 거기 (정면으로) 서 있는 자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눈
한순간 맞부딪쳐 버리는 자기 자신의 극한의 눈
의, 벼락
에 타버리는 것, 죽는 것이다
∴ 첨예한 고통과 고독 응시할 때는
반드시 한쪽 팔 잡아줄
햇빛 나누어 줄
디오게네스에게 미리 필히 연락해둘 것
(추신: 그러므로 아픔들이여! 그렇게까지는 자기 자신을 몰고 가지 말 것)
-『학산문학』2017-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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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2부/ p. 54-55)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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