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뭉게구름/ 조정권

검지 정숙자 2018. 2. 4. 16:06

 

 

    뭉게구름

 

    조정권(1949~2017, 68세)

 

 

  뭉게구름은 들풀科에 속해 있다고

  한 줄 쓰고 뭉개고 나서.

  뭉게구름은 여름풀과에 속해 있다고

  고친 다음.

  뭉게구름은 무허가건물과에 속해 있다고

  다시 고쳐 쓴 다음

  이렇게 고쳐도 되나 하고 또 손 놓고 있는데

  토란잎에서 연필 깎는 소리가 들려와

  귀로 헤쳐 본다.

  잎사귀 밑에 기거하던 달팽이가 기어오다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나에게 소음성난청 진단을 내렸다.

  음악을 장세월 들어 

  귓속 달팽이관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길바닥에 나앉은 내 귀도 무허가건물과에 속할 것이다.

  흰 알약 받아오는 길

  땅바닥을 뚫고 있는 콤프레샤 소리도 보청기로 들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내 귀는 우이독경의 경지로?

  이왕이면 우이동 꼭대기 뭉게구름 앉아계신 독경대 밑이나

  아니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제주 산간도로

  풀 뜯는 마소 옆에서 마이동풍? 

  여름날 뭉게구름 쳐다보고 뭉개고 또 뭉개다가

  토란 잎사귀 사이를

  갈지자로 걸어 다녔던 달팽이가 잃어버린

  비의 지갑 하나를 주웠다.

  빗방울이 깨트린 파꽃이 하얗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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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17-12월호 <현대시 어드벤티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