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탈출기
정과리
김군! 거듭 말한다. 나도 사람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떠나는 날부터
식구들은 더욱 곤경에 들 줄도 아는 알았다. 자칫하면 눈
속이나 어느 구렁에서 죽는 줄도 모르게 굶어 죽을 줄도
나는 잘 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도 남의 집
행랑어멈이나 아범이여, 노두에 방황하는 거지를 무심히
보지 않는다. 아! 나의 식구도 그럴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흐르는 눈물과 뿌직뿌직 찢기는 가슴을
덮쳐잡는다.
-최서해, 「탈출기」
[최서해,『단편선:탈출기』(곽근 책임편집), 2004, p.28.]
지난 달의 얘기 중에서 서정주에 해당하는 것만을 되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정주의 시는 '정부'(고은)라는 명명을 받을 만큼 한국의 현대시에 압도적인 권위를 누렸다.
(2) 서정주의 시는 김영랑에 의해 구축된 한국적 서정을 연장하였다.
(3) 서정주의 시는 한국적 서정의 시학을 근본적으로 갱신하였다.
(1)은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2)와 (3)은 풀이를 요구한다. 동시에 그 둘은 현상적으로 양립불가능의 관계에 놓여 있다. 즉 (3)의 사실은 (2)의 상태를 극복하면서 그 흔적을 말끔히 씻었다, 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라는 한정어는 그래서 들어간 것이다. 이 또한 분석을 요한다.
우선 서정주의 시가 김영랑의 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선 지금까지의 논지 안에서 이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김영랑이 세운 시학이 '기다림'의 시학이라는 것. 왜 기다림인가? 이 역시 충분히 기술되었지만 한 번 더 정리해보자.
근대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한반도의 사람들은 근대인으로서의 자각을 서서히 체화해갔다. 그들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지배당하는 굴욕을 겪는 사태를 감내했던 것은 그로부터 들어올 새로운 문물에 대한 열망이 그 이상으로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근대인이 된다는 것은 독립국 안에서 자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지배자에게 요구하였다. 그 결과는 참담한 좌절이고 굴욕의 재확인이었다.
그때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본래 소망했던 '근대적인 것'은 온전히 생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사람들이 소망한 것은 '근대적인 것'으로부터 슬그머니 미끄러져 나와 '우리 고유의 것'으로 변성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상당수는 그 미끄럼틀을 타고 절망의 나락에서 탈출한다. 물론 '고유의 것'의 소재를 그들은 알고 있지 못했다(원래 '없는 것'이니까라기보다는 '없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실의 '지위'를 가지고 그들의 소중한 보물이 된다. '기다림'의 태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을 하나의 시적 태도로 확립한 것이 김영랑과 박용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적 태도는 단순히 기다림의 정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나의 삶의 원리, 즉 '시적 언어를 통한 삶의 원리'로 빚어내는 게 시적 태도가 하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박용철은 릴케를 끌어들여, '절차탁마'하는 언어세공의 원리로 삼았다. 다른 한편 김영랑은 '관조의 자세'에 의해 기다림의 태도 자체에 사는 보람을 새겨 넣었다. 즉 관조한다는 것은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가정한 것, 그래서 기다림의 아이디어에 의해 언젠가 도래할 '무엇'으로 지시된 것이 도래하는 기미를 살피는 일이다. 그 살핌에서 그 기미가 기미로 떠오르는 게 오죽 작은 기쁨일까?
서정주가 이 기다림의 시학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우선 주제적으로 확인된다. 지난 호에 읽다 만 「자화상」을 다시 들여다보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어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 『미당 서정주 전집 1. 시』, 은행나무, 2015, p.27.
이 시의 발생적 원인은 "애비가 종"으로 살았는데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비가 빈자리에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다. "늙은 할머니"는 '아비'를 대신하고 "대추꽃"은 '돌아오는 아비'를 대신한다. 즉 후자에서 대리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자세이다. 즉 '돌아오다'를 '서 있다'로 대신하는 것이다.
이 정황은 적나라한 기다림, 아비가 오지 않아서 한없이 서서 기다리기만 할 뿐인 정황이다. 만일 「자화상」이 서정주의 시인적 출분의 근원에 속한다는 점(재작년부터 올해에 간행된 은행나무 간, 『미당 서정주 전집』은 「자화상」을 "23세 되던 1937년 중추에 지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당선한 게 1936년이니까, 집필 시기로도 비교적 출발점에 놓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서적 근원이 물리적 시기와 맞물리는가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기다림'의 그 출분의 '전사'에 해당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보다 앞서 쓰인, 「벽」에서도 그 기다림의 정황은 여실히 드러난다.
덧없이 바래보든 벽에 지치어
불과 시계를 나란이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아닌
꺼져드는 어둠 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정지한 '나'의
'나'의 서름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 차고 나가 목메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아.
- 서정주, 「벽」, 『미당 서정주 전집 1. 시』, 은행나무, 2015, p.47.
'시계'의 등장은 시간의 '죽음'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다. 즉 무언가가 일어나야 하는데 시간만 가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불과 시간을 나란이 죽이고"는 그것들이 '나란히 죽은 것을 재삼재사 확인하며'라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기다림에 지쳐서 "꺼져드는…(중략)…반딧불처럼 까물거"린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지막 연의 첫 번째 행이다.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에서 화자는 이 무한정한 기다림이 막바지에 다다르기를 '기다린다'! "봄날이 오면"이 선명하게 가리키는 것이 그 태도이다. 기다림을 끝장내고자 하는 시간도 그는 '기다린다.' 그것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이 보여준 태도이며, 동시에 그만의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당시 조선인들이 공유하는 태도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기억하리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우리는 분명 읽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왜 이 사람들은 기다림을 기다리는가? 기다림의 지루함을 깨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가? 그 다른 일이 도래하기를 왜 기다리는가? 어쨌든 그 야릇한 자세를 식민지하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취한 것이었다. 이 정서가 집단적이었다는 것은 미당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千五百年 내지 一千年 前에는
金剛山에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별은, 그 발 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宋學 이후,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치켜든 손보다 더 놓은 데 자리하더니
開化 日本人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虛無로 塗壁해놓
았다
그것을 나는 單身으로 側近하여
내 體內의 鑛脈을 통해, 十二指腸까지 이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또 거기서 逸脫한다. 逸脫했다가는 또
내려와 貫流하고, 貫流하다간 또 거기 가서 逸脫한다.
腸을 또 꿰매야겠다.
-「한국성사략 韓國星史略」,『신라초』,『미당 서정주 전집 1. 시』, p.218.
이 시는 은유로 장식되어 있지만 주제가 명백하다: 옛날의 한국인들에겐 성과 속이 통해 있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성이 멀어지기 시작했고, 일본이 그 거리를 아예 절단시켜 놓았다; '나'는 나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성 가까이로 가려고 하였으나, 자주 끊어지고 성은 거듭 일탈한다. 이 시는 직접적으로 기다림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사실은 이 점이 미당이 김영랑으로부터 달라지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기로 하자.) 그러나 여기에는 은밀히 기다림이 '나'의 사건은 아니지만 '한국인 일반'의 사건이라는 것을 은밀히 암시하고 있다. "허무로 도벽해 놓았다"는 표현이 가리키는 것이 그 언저리다.
서정주에게 '기다림'이 무의식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항상적 강박관념이라는 것은 이런 시에서도 보인다. 비교적 말년에 출간한 시집 『산시』(1991)에 수록된 시편이다.
힘주어 낳아서
가려 놓은 내 새끼는
인자隣子야 네가 갖다가 어째 버렸늬?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땐
옆집 곰보놈하고 도망치다가
붙잡혀 당하기도 하더니마는,
우리 소저 류자야, 너 어디로 갔늬?
우리 신랑 뎀포야, 너는 또 어디메냐?
오고 또 와서는
아 일본말로도 기다려 본다오.
"수마트라의 언니만큼은
부디부디 타락 마우."
보르네오의 동생 라야 올림.
-「인도네시아 신들의 소리」,『미당 서정주 전집 5. 시』, 은행나무, 2015, pp.52~53. 첫 연은 인용하기가 민망하여 생략한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제사를 써 놓았다.
인도네시아 말을 전혀 모르는 내가 이곳 산 이름들을 외고 있다가 보니, 그것들이 우리 한국말로 아래와 비슷하게 들려와서 그것 옮겨 적어 두는 바이다.
시인은, 의미가 가정되어 있지만 그가 이해할 귀를 가지지 못한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짐작해 번역하는데, 그 내용은 일제 강점기 하의 조선인의 수난을 가족의 상실과 "타락"과 기다림의 사건들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를 떠올린 것은 인도네시아가 20세기 전반기에 비슷한 식민지의 경험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 종전 후 인도네시아가 이어 나간 길은 해방 후 한국이 간 길과 방향이 아주 달랐고, 그 점에 대해서는 최인훈의 『태풍』이 다룬 적도 있다. 시인에게 그런 역사적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핵심은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에게 깊이 강박된 것이 본능적으로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서정주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기다림에 대한 강박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라는 한 행 안에 농축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이'에게 맺힌 마음이었다. 그 '그이'가 '법'인지 '안식'인지 '권위'인지, '이상향'인지, '국가'인지, 그런 것은 나중에 다시 헤아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시적 의식은 그 무의식으로부터 달아나는 데 있었다. 독자는 방금 「한국성사략」에서 그 편린을 보았다. 실상 이 자리에서 인용한 모든 시들이 그 '달아남'의 충동을 표현하고 있다. 「자화상」에서 '나'는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다. 「벽」에서는 "벽 차고 나가 목메어 울리라!"는 열망에 몸달아 있다. 그때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직 그가 기다림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지만, 조만간 서정주의 시적 대리인은 곧 "팔할이 바람"에게 "키워"져 더 이상 기다리지 앟는 이로 성장할 것이다. 과연 「한국성사략」에서 그는 '허무'의 한국적 정서를 탈출해, "내 體內의 鑛脈을 통해, 十二指腸까지 이끌어"가는 시도를 행한다.
그래서 문득 어느 시점이 되어서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자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 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지나간 小滿의 때와 맑은 가을날들을
내 이승의 꿈잎사귀, 보람의 열매였던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기다림」,『신라초』,『미당 서정주 전집 1. 시』, p.183.
드디어 그는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서정주 시의 모험은 기다림의 강박으로부터 탈출해 '다른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갔던 것인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적 서정시의 전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당은 김영랑적인 것으로부터 탈출했으나, 다른 세상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 다른 세상에 대한 기원은 먼 훗날,
여보, 우리 꺼지자 남미로, 남극으로, 우리의 대척지로, 어디든!
- 황지우, 「그대의 표정 앞에」,『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p.42.
에 가서야 표명되게 된다. 그것도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못 살아 못 살아. 들어가면 아내에게 소리 지를 거다
라는 쬐그만한 소망의 형태로 겨우. 물론 그 이전에 한국인이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어딘가'는 종종 '율도국'의 이름으로 지시되곤 하였다. 그러나 율도국은 '다른 세상'인가? 황지우에게 율도국은
나의 애간장 다 녹이는
조이고 쪼이는
내 몸뚱어리 빨래가 되고
오 빨래처럼
屍身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가고 싶다
- 「파란만장」,『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p.38.
에서 볼 수 있듯, 다른 세상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다른 세상은 죽음의 자리이다. 신생의 자리가 아니다. 그가 곧바로 '율도국'을 '어디든'으로 바꾼 것은 그 때문이다. 시 「기다림」에서 미당의 율도국도 '저승'이었다.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자화상」의 그 대추나무다. 그 대추나무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림의 표상이 되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저승' 쪽으로 들이미는 더듬이가 된다. 황지우가 그랬듯,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푸념조로 죽어서 저승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당은 살아서 저승을 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 저승은 무엇인가? 「한국성사략」에서 그것은
내 體內의 鑛脈을 통해, 十二指腸까지 이끌어
간 일로 표현된다. 우선 독자가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그가 세상을 바꾸려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한 일은 "십이지장까지 이끌어 간"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문법적으로 오류인 이 시행을 제대로 고쳐 읽으면,
나는 내 신체 내부가 광맥임을 알고 십이지장까지 내려갔다
가 될 것이다. 시의 구문대로 읽으면 그가 십이지장까지 이끌고 간 것은 화자의 눈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눈길을 끌고 간 것은 '눈길'로 하여금 '개안'을 시키기 위해서이다. 무엇에 대한 개안을? 바로 내 신체 내부가 광맥이라는 사실. 그 광맥 안에 '별'이 있다는 사실. 혹은 '별'이 거기로 '貫流'한다는 사실. 거기에 끊어진 곳이 있으면 "逸脫"하곤 하니, 그때마다 광맥을, 다시 말해 자신의 십이지장을 잘 꿰매야 한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한 개안이 바로 화자의 '눈길'을 끌고 간 까닭이다.
여기에 서정주 탈출기의 핵심이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이 세상 안으로 간다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찾아보려 떠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다 지쳤으니 이 죽음 같은 세상 안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호에 서정주 시의 비밀이 「자화상」의 마지막 행에 있다고 했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어리며 나는 왔다.
이제 눈 밝은 독자는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미당 시의 주인공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그는 "왔다." 어디로? 바로 이 세상으로. 이 죽음의 세상으로. 훗날 미당의 한참 후배인 동족들이, 미당을 흉보는 사람이든 모시는 사람이든, "헬 조선"이라고 부르게 되는 '바로 이곳'으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미당 시가 '기다림'의 시학에서 탈출하긴 했는데, 그때 시인은 '눈길'을 이끌고 갔다고 했다. 바로 거기에 이곳으로 '온' 결단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추석 지나고 얘기해 보련다.(다음 호에 계속) ▩
------------
*『현대시』2017-10월호 <기획연재 20/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에서
'작고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경철_백척간두에서 일군 공(空)과 적멸의 시학(발췌)/ 낙화 외 1편 : 이형기 (0) | 2018.02.11 |
|---|---|
| 뭉게구름/ 조정권 (0) | 2018.02.04 |
| 남송우_윤동주 「서시」 다시 읽기(발췌)/ 바람이 불어 : 윤동주 (0) | 2017.12.08 |
| 이름 없는 女人 되어/ 노천명 (0) | 2017.11.19 |
| 정애진_자선친필 시고/ 돌아와 보는 밤 : 윤동주 (0) | 2017.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