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1917-1945, 28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
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
(延長)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할텐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
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 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
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1941. 6.
▶ 어둠 속에서 익어가는 이 시대의 청춘을 '돌아보다'_ 정애진
필자는 우리나라의 시인 중 가장 먼저 '윤동주'를 알았다. 그만큼 윤동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부끄러움의 감정을 탁월한 서정성으로 아름답게 승화해냈던 시인 윤동주, 그 이름을 들으면 우리의 머릿속은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떠오른다. 학사모를 쓰고 한편으로는 앳된, 또 한편으로는 의젓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다.
1945년, 29세의 나이에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서 수학하며 사회와 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던, 누구보다 성숙하고 정직한 청년이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청년 윤동주'와 만난다. 그에게도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처럼,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그는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고 외쳤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청춘은 여전히 아름답고 눈부신가.
돌이켜보자면, 윤동주의 청춘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그 또한 한 여성을 사랑해본 일이 있었고, 함께 글을 쓰는 동지들과 끈끈한 우정을 나눠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너무도 피로하게 만들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는 청춘의 푸른 생기를 잃어버렸다. 일제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 하루를 끝마치고 좁은 방으로 돌아오는 일, 그것만이 지독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횡포에도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 너머에 있는 좁은 방에서 숨을 쉬고, 생각하고, 시를 썼다. 한줄기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홀로 침잠하는 일, 이것이 그가 시대와 투쟁하는 방법, 청춘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고요한 방안에서 그의 세계는 천천히 익어갔다.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점점 획일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좁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고만 하지 않는가.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르듯, 광활한 세상은 청년들의 병을 알지 못한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너도나도 어린아이처럼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은 과연 존재하는가.
현대의 청년들은 찬란한 청춘의 색을 스스로 지워내고 있다. 청춘의 부스러기들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사소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청년 윤동주는 이야기하고 있다. 깜깜한 밤에도 열매가 익고, 꽃이 피듯 청춘의 고뇌와 아픔이 곧 뜨거운 등불이 될 것을 말이다. 우리는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룩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 간 한 시인의 모습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또 다른 모습을 이제는 찾을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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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7-겨울호 (기획연재 _윤동주 시인>에서
* 정애진/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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