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혈
신달자
궁궐 같은 기와집이 빚에 넘어가고
어머니는 수면제 30날을 털어 넣고 자살을 기도했다
왜 나를 살렸느냐고 발악하는 어머니는 정신을 차렸지만
부끄럽다 부끄럽다 밤 2시에 트럭으로 열두 시간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벙어리처럼 석 달 말문을 닫고 귀머거리처럼 석 달 듣지
않고
목석처럼 벽에 기대어 세월 보내다가
그 석 달을 깬 긴 통곡은 붉은 산불보다 오래 타올랐다
절망도 우지끈 무너져 재가 되었다
어머니의 각혈 같은 울음이 그치고
비수를 쥔 듯 연필 하나 쥐고 종이를 달라고 보채셨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으로 피를 찍듯 가 나 다
를 연습해서는
3년 만에 딱 한 장 딸에게 쓴 편지
“내 말 잇지마라라 주글때까지 공부하거라 돈 버러라
에미갓지 살지 마라라 행볶하여라“
종이 위에 쏟은 어머니의 비릿한 각혈 한 덩어리
지금도 뜨뜻하고 물컹하게
종이에 살아 있는 액자 속의 유서.
---------------
*시집『종이』에서/ 2011.3.25 (주)민음사 펴냄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64년《여상》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1972년 박목월 추천으로『현대문학』에 재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