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신달자
누구의 낙관일까
지리산에서도 한참은 떨어져 있는
경상남도 산청 율매마을
천년을 마르지 않는
둥근 연못 하나
저 지리산을 통째로 하나의 두루마리 종이로
절규에서 절규로
굽이굽이마다 두 발로 내려 쓴 그 대작의 역사 끝에
거대한 한의 덩어리를 짓이긴 불꽃의 인장을
활활 낙관으로 여기 찍어 놓았는지
이 난망한 시간 불꽃의 화려한 변신
몇 억 년 전 바람과 낯부끄러운 구름의 나신들을 담는
우물의 낙관을 어디서 본 적 있는가
하늘이 구름에게 가 보라고 권하는
지리산 아래 산청 율매마을
천왕봉이 허리를 굽혀 이마로 꽝꽝 찍은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붉게 비치는
연못
붉은 낙관 하나.
*시집『종이』에서/ 2011.3.25 (주)민음사 펴냄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64년《여상》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1972년 박목월 추천으로『현대문학』에 재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