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연못/ 신달자

검지 정숙자 2011. 4. 10. 02:30

    연못


    신달자



  누구의 낙관일까

  지리산에서도 한참은 떨어져 있는

  경상남도 산청 율매마을

  천년을 마르지 않는

  둥근 연못 하나


  저 지리산을 통째로 하나의 두루마리 종이로

  절규에서 절규로

  굽이굽이마다 두 발로 내려 쓴 그 대작의 역사 끝에

  거대한 한의 덩어리를 짓이긴 불꽃의 인장을

  활활 낙관으로 여기 찍어 놓았는지

  이 난망한 시간 불꽃의 화려한 변신

  몇 억 년 전 바람과 낯부끄러운 구름의 나신들을 담는

  우물의 낙관을 어디서 본 적 있는가

  하늘이 구름에게 가 보라고 권하는

  지리산 아래 산청 율매마을

  천왕봉이 허리를 굽혀 이마로 꽝꽝 찍은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붉게 비치는

  연못

  붉은 낙관 하나.

 


  *시집『종이』에서/ 2011.3.25 (주)민음사 펴냄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64년《여상》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1972년 박목월 추천으로『현대문학』에 재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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