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숲/ 김복태

검지 정숙자 2011. 4. 4. 01:09

   숲


    김복태



  자정을 넘은 부엌 어둠의 뿔이 자란다 희고 고요한

  침묵이 살아 숨을 쉰다 파아란 사슴 한 마리 어둠의

  숲 속을 걸어가다 멈춘다 파아란 뿔은 점점 자라서

  꽃이 피고 새들이 모여든다 흰 바탕의 접시 안에 사슴이

  뿔을 키운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어 달리고 다람쥐들은

  재주를 부린다 사슴이 한 발짝씩 걸을 때마다 흔들리며

  크는 새, 따뜻해지는 꽃, 걸어다니는 꽃, 푸른 요정들이

  모여들고 뿔에 매어 달린 잎사귀 사이로 푸른 요정들이 춤을 추면

  희고 둥근 달이 놀러 올지도 모른다

  어제는 사향노루가 놀러 왔었다 향낭에서 사향을

  아주 조금 내게 건네주고 갔다 오늘은 별빛에

  방금 갈아놓은 예리한 칼로 사과를 깎아서 올려놓았다

  뿔 한가운데 어쩌면 이 숲 깨어질 수도 있다

 

 

  *시집『초승달 나무』에서/ 2010.7.19 <책만드는집>펴냄

  *김복태/ 충남 공주 출생, 1997년『문학공간』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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