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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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정숙자 2017. 9. 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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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자

 

                                                              

  견딤은 참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견딤은 강제된 인내가 아니다

 

  외로운 응전/절제된 적응

 

  모호의 전모를 둘러보는 것이다

  꼼꼼히, 세세히, 문제의 핵심이 만져질 때까지, 문제가 스스로 답안

을 들고 걸어 나올 때까지, 그 암호가 다음의 문을 비춰줄 때까지

 

  견딤은 최전선에 내리는 총동원령

  경계수호의 지시와 반성적 잠복

 

  그것은 가칭 ‘빛의 예약’이며 ‘신에게 바치는 허밍’이라 해두자

 

  난황일수록 더욱 지긋이,

  우리가 아무리 웃고 있어도, 우리가 아무리 울고 있어도 그건 웃음

이 아니라 울음이 아니라 <견딤>이라는 걸

  저 과묵한 산은 알고 있겠지?

 

  산은 늘 묵직한 가슴으로 복기/속기하므로

  우리의 걸음걸이를 우리의 뼛속을 모든 나무는 눈이고 모든 바람

은 눈이고 모든 구름은 눈썹이므로

 

  바람을 내려 답사하고, 물살을 굴려 탐사하고, 돌멩이를 버려 읽어

내므로

 

  견딤은 우리에게 마지막 불씨이지

  끌려가는 게 아니라 끌고 가는 밤낮이지

  그러니까 그것은

  번번이 도강하는 침묵이랄까

 

  숱한 왜곡이 드나들고 멈추고 회오리치며 생명력을 소집하는

  견딤은 참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온갖 지층의 출력, 그리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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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청춘』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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