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26
정숙자
슬플 비// 가뭄에 내리는 비는
어찌 이리도 인색한가? 하지만
시늉에 그친 빗방울에도
산책로 여기저기 물이 고였다
책 쪽에 눈을 가두었으나 골라 디딜 만큼은 보이는 길
찌질 뻔질 물웅덩이 몇… 반쯤 잠겨 굳은 애까치…
마른 곳에 옮겨줘야지. 어깨끈 가방에서 꺼낸 비닐봉투로 녀석을 감
싸는 찰나 까 까 까 된소리를 낸다. 아니! 살았어? 녀석을 울타리나무
아래 뉜 다음… 비닐봉투를 손수건으로 닦은 다음… 본래대로 접어 가
방에 넣은 다음… 다시 책을 펴고 걷는다.
아직 안 죽었는데… 추울 텐데… 밤사이 비가 또 올지도 모르는데…
더 젖으면 안 될 텐데… 애까치가 있는 곳으로 되짚어 걸어간다. 어느
젊은 모녀가 그 자리에 서서 몹시 놀란 표정으로 “큰 까치들이 막 달려
들어서 막 찍어요. 막 찍어 죽이려 해요.”
“제가 저기서 이쪽으로 건져놨어요. 비올까 봐 걱정돼서 덮어주려고
저만큼 갔다가 돌아왔어요.” 조금 전 가방에 넣은 분홍색 비닐봉투를
도로 펼쳤다. “큰 까치들이 벗기면 어떡해요, 돌멩이로 눌러주세요.”
“그러면 살아날 경우 못 나오지 않을까요?”
바람 없는 해거름
비닐이 날아갈 것 같진 않았다
모녀와 나는 애까치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서로 반대쪽으로 길을 이었다
약자의 삶에는
마른 날 하찮은 비도
위협과 위력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큰 까치들이 달려들어 마구 찍어댄 것은 그들의 언어였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아가야, 아가야, 일어나 봐. 어서 일어나 어서” 부리
로써 마음을 전하려 했던 그들. 여럿이 날아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
었던 그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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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 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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