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이슬 프로젝트-26

검지 정숙자 2017. 9. 17. 02:43

 

   

    이슬 프로젝트-26

 

     정숙자

 

                                                              

  슬플 비// 가뭄에 내리는 비는

  어찌 이리도 인색한가? 하지만

 

  시늉에 그친 빗방울에도

  산책로 여기저기 물이 고였다

 

  책 쪽에 눈을 가두었으나 골라 디딜 만큼은 보이는 길

  찌질 뻔질 물웅덩이 몇 반쯤 잠겨 굳은 애까치

 

  마른 곳에 옮겨줘야지. 어깨끈 가방에서 꺼낸 비닐봉투로 녀석을 감

싸는 찰나 까 까 까 된소리를 낸다. 아니! 살았어? 녀석을 울타리나무

아래 뉜 다음 비닐봉투를 손수건으로 닦은 다음 본래대로 접어 가

방에 넣은 다음 다시 책을 펴고 걷는다.

 

  아직 안 죽었는데 추울 텐데… 밤사이 비가 또 올지도 모르는데

더 젖으면 안 될 텐데 애까치가 있는 곳으로 되짚어 걸어간다. 어느

젊은 모녀가 그 자리에 서서 몹시 놀란 표정으로 “큰 까치들이 막 달려

들어서 막 찍어요. 막 찍어 죽이려 해요.”

 

  “제가 저기서 이쪽으로 건져놨어요. 비올까 봐 걱정돼서 덮어주려고

저만큼 갔다가 돌아왔어요.” 조금 전 가방에 넣은 분홍색 비닐봉투를

도로 펼쳤다. “큰 까치들이 벗기면 어떡해요, 돌멩이로 눌러주세요.”

“그러면 살아날 경우 못 나오지 않을까요?”

 

  바람 없는 해거름

  비닐이 날아갈 것 같진 않았다

  모녀와 나는 애까치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서로 반대쪽으로 길을 이었다

 

  약자의 삶에는

  마른 날 하찮은 비도

  위협과 위력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큰 까치들이 달려들어 마구 찍어댄 것은 그들의 언어였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달았다. “아가야, 아가야, 일어나 봐. 어서 일어나 어서” 부리

로써 마음을 전하려 했던 그들. 여럿이 날아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

었던 그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이, 들. 

 

   -----------------  

  *『문학청춘』 2017-가을호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 프로젝트-27  (0) 2017.09.25
저울추 저울눈  (0) 2017.09.18
즐겨참기  (0) 2017.09.16
이슬 프로젝트-28  (0) 2017.09.07
휴먼 노마드  (0) 2017.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