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노마드
정숙자
밭도, 밭이라는 말도
출현하기 전
먹이를 찾아 흘렀던 우린
한낱 야생이었다
한 숲을 먹고 나면 또 다른 숲을 향해 강을 건넜다
열매를 찾아 짐승을 찾아 구름을 밟고
바람에 섞여오는 새소리를 꿰어 목에 걸기도 했다
그때 이후 태양은 우리를 일러 대지의 노마드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뭇~ 뭇~ 파도를 다스려 오늘에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또 유목민으로 떠나야 한다
맑고 따뜻한 얼굴을 찾아 산 너머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새벽닭이 굴려주는 이슬을 꿰어야 한다
번갯불 앞지르는 지구온난화의 커튼 탓인가
쩍쩍 갈라지는 신뢰와 사유의 패턴
이게 다 기후 탓일까?
이데올로기에 떠밀어도 편치가 않다
오랜 멀미를 거쳐 정착민이 되긴 했으나
이제야말로 우리 모두는 우울한 노마드가 되고 말았다
짐승이 아닌 인간을 찾아
인간이 아닌 짐승을 피해
더 이상의 바람도 숲도 배고픔과 싸우던 순수도 없이
…너는 내가 아니었구나
너는 내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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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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