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휴먼 노마드

검지 정숙자 2017. 9. 7. 13:09

 

 

    휴먼 노마드

 

    정숙자

 

 

  밭도, 밭이라는 말도

  출현하기 전

  먹이를 찾아 흘렀던 우린

 

  한낱 야생이었다

  한 숲을 먹고 나면 또 다른 숲을 향해 강을 건넜다

  열매를 찾아 짐승을 찾아 구름을 밟고

  바람에 섞여오는 새소리를 꿰어 목에 걸기도 했다

 

  그때 이후 태양은 우리를 일러 대지의 노마드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뭇~ 뭇~ 파도를 다스려 오늘에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또 유목민으로 떠나야 한다

  맑고 따뜻한 얼굴을 찾아 산 너머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새벽닭이 굴려주는 이슬을 꿰어야 한다

 

  번갯불 앞지르는 지구온난화의 커튼 탓인가

  쩍쩍 갈라지는 신뢰와 사유의 패턴

  이게 다 기후 탓일까?

  이데올로기에 떠밀어도 편치가 않다

 

  오랜 멀미를 거쳐 정착민이 되긴 했으나

  이제야말로 우리 모두는 우울한 노마드가 되고 말았다

  짐승이 아닌 인간을 찾아

  인간이 아닌 짐승을 피해

 

  더 이상의 바람도 숲도 배고픔과 싸우던 순수도 없이

  너는 내가 아니었구나

  너는 내가 아니었구나

 

 

    --------------

   * 『가온문학』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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