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 - 28
정숙자
그로부터 며칠 후// 죽은 새는 왜 좀 더 깊이 읽히는가. 내 손으로 묻
어주기 전에는 다만 현상이었던 종, <어떤 관계도 형성되지 않았던 목,
<까치였든 비둘기였든 참새였든 환경에 불과했던 문… 그런데 주검을
수습한 다음 관련이 생긴 것이다.
그가 묻힌 자리쯤에선 발걸음을 멈추고, 단 몇 초만이라도 바라보다
가 가만가만 흙을 밟아주기도 한다. 좀 전의 정신적 지향까지도 중지
시킨다. 아니, 아니다 '중지시킨다'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비워진다.
그걸 경건이라 할 수 있을까.
텅 빈 그 순백純白의 형질이 죽은 새의 언어이기라도 한 것일까. 텅
비었다고 느끼는 그 공간이 새의 마음을 듣는 순간일 걸까. 이렇게 현
실성 없는 현장이 여울지는 산책로를 나는 그저 숙독한다. 새를 묻은
자리가 어느새 살짝 꺼져 있다.
그를 묻은 자가 아니면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의 작고 부드러운 땅
꺼짐. '그로부터 며칠밖에 안 되었는데 육탈이 되었다니!' 더 이상 어
떤 생각도 떠올리지 못한 채 내 가슴에도 꼭 그만한 흔적이 남는다.
…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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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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