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말들의 유해
정숙자
현장을 떠난 말들이 붓두껍 속에 고이는 걸까
침묵을 건넌 말들이 거기 머물러 씨앗이 된다는 걸까
어디선가 다친 말
묻어버린 말
쓰러진 말
바람 소리 날려보지도 못한
하늘, 곳곳에 뿌려진 타인의 말도 때로는 익명의 필묵에 맺혀
가만가만 익어간다는 것일까
살얼음을 끼고 창가에 당도한 아침
입 속에서, 어깨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생존의 빙벽
어떤 회로를 타고 창궐했는지
구밀복검口蜜腹劍, 참으로 당돌한 팔매질이다
말을 떠나서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자다'
이런 말이 공공연한 주술이 된 지도 오래!
말없이도 말이 되던 말다운 말
어떤 말에도 파묻히지 아니하던 실다운 말
그리운 그리, 운 말들 사라지는데 슬픈 문장이 멀리서 온다
-『들소리문학』201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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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1부/ p. 40-41)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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