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송찬호
나는 한때 이슬을 잡으러 다녔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물병 하나 들고
풀잎에 매달려 있는 이슬이란 벌레를
이슬이란 벌레를 잡기는 쉬웠다
지나간 밤 꿈이 무거운지
어디 튀어 달아나지 못하고
곧장 땅으로 뛰어내리니까
그래도 포획은 조심스러웠다
잘못 건드려 죽으면
이슬은 돌처럼 딱딱해지니까
나는 한때 불과 흙과 공기의 조화로운 건축을 꿈꿨으나
흙은 무한증식의 자본이 되고
불은 폭력이 되고
나머지도 너무 멀리 있는 공기의 사원이 되었으니
돌이켜 보면 모두 헛된 꿈
이슬은 물의 보석, 한번 모아볼 만하지
기껏 잡아놓은 것이
겨우 종아리만 적실지라도
이른 아침 산책길 숲이 들려주던 말,
뛰지 말고 걸어라 너의 천국이 그 종아리에 있으니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 의식 주체의 순수한 꿈을 깨뜨린 어떤 불순한 것은 무엇일까? 시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아서는 의식의 주체인 '나'는 여전히 순수한 꿈을 포기하지 않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처음에 가졌던 꿈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원인을 제공한 대상이 모호하다. 순수한 꿈을 포기하지 않은 '나'의 상태로 보아서는 그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어떤 불순한 것의 존재를 더욱 애매모호하게 하는 "흙은 무한증식의 자본이 되고/ 불은 폭력이 되고/ 나머지도 너무 멀리 있는 공기의 사원이 되었으니"라는 진술이다. 이 각각은 어떤 불순한 것의 주체를 드러내고 있는 진술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불순한 것의 존재를 숨긴 채 그 결과만을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시의 행간에서 어떤 불순한 것의 존재를 지각할 수 있다. 의식 주체의 순수한 꿈을 약화시킨 존재가 자신일 수도 있고 또 외부의 어떤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애매하고 모호한 지각장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만일 시인이 어떤 불순한 것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면 모호함은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그 모호함에서 오는 의식 주체의 내면과 외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도 사라질 것이다. 의식 주체의 내면과 외부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결과적으로 순수와 비순수 사이의 길항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이 시처럼 그의 시는 대부분 어떤 불순한 것의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순수와 비순수의 길항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재복/ 문학평론가)
-------------
* 시집『분홍 나막신』에서/ 초판 1쇄 2016.3.4/ 초판 4쇄 2016.12.8.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송찬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시대의 문학』6호에 작품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옴,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등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구개음/ 이범근 (0) | 2017.08.26 |
|---|---|
| 유리천장/ 이희섭 (0) | 2017.08.26 |
| 상사풀꽃/ 남효선 (0) | 2017.08.24 |
| 꽈리를 불다/ 남효선 (0) | 2017.08.24 |
| 찔레꽃과 나와 새/ 송과니 (0) | 2017.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