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유리천장/ 이희섭

검지 정숙자 2017. 8. 26. 16:08

 

 

    유리천장

 

     이희섭

 

 

  저음의 목소리를 버린 새 한 마리가

  잘못 날아들었다

  유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부딪쳐 나가지 못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몽환적인 불빛이

  심장을 끌어당긴다

  밤이면 모아놓은 빛을 탕진하며

  진실과 거짓 사이를 날아다녔다

  허공에 머리를 부딪고 추락하는

  도시의 신음소리도 들었다

  철거를 기다리는 폐가의 우편함처럼

  부치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누군가의 부록으로 숨을 쉬고 있다

  서로가 고음이 되려 하는 지상의 음역에서

  성대를 잃어가는 새들의 침묵

  가위눌린 달빛처럼 이제는 날지 않는

  투명한 울음들

  저녁의 날개를 접은 채

  아직 깨지지 않은 유리창에

  갇혀 있는 저 새 한 마리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흐리게 빛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안에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승진을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 용어이다. 가령 "서로가 고음이 되려 하는 지상의 음역에서/ 성대를 잃어가는 새들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유리천장의 상황과 조건을 빼어나게 비유한다. 어쩌면 "저음의 목소리를 버린 새 한 마리"는 투명한 유리천장에 부딪히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투명한 울음"으로 있는 존재자의 대표적 심상일 것이다. 비록 창문 너머 몽환적 불빛이 심장을 끌어당겨도 그 '새'는 "허공에 머리를 부딪고 추락하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깨지지 않은 유리창에/ 갇혀 있는" 존재자들을 어둑하게 환유한다. 그때 창문에 비친 시인의 모습이야말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흐릿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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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초록방정식』에서/ 2017.8.20. <서정시학> 펴냄

  * 이희섭/  경기 김포 출생, 200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스타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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