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연구개음/ 이범근

검지 정숙자 2017. 8. 26. 23:10

 

 

    연구개음

 

    이범근

 

 

  공중의 생살을 찢어 놓은 나뭇가지 아래로

  휠체어에 앉은 당신을 밀고 간다

  피가 안 들리고 비명은 보이지 않는

  고개를 젖혀 들여다본 살 속엔

  원근이 없다

  별빛 너머로 활강하는 화살들

  해 뒤에서 뭉치고 흩어지는 구름

  전선에 걸린 과자 봉지가

  아물지 않는 몸을 덮는다

  어두워진 몸이 밤과 구별되지 않는다

  휠체어를 미는 힘은

  나무 아래로 간다

  고목이 아직 묘목이었을 때

  당신의 무릎에 앉아

  내가 만젔던 옹이

  이제 휠체어보다 더 낮게 앉아

  듣는다 고목이 놓아 버리는 마른 음표들

  음악 아래 당신을 묻는 소리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이 한 일은 어떤 운동 과정을 이미지 연쇄에 의해 표현하되 그것을 세필細筆로 백일하에 데생해 보이는 대신에 구도와 형상을 완성하고 마지막에 붓끝으로 화면을 슬쩍 문질러 둠으로써 이미지 연쇄의 결과를 흐릿한 화면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전형적인 스푸마토sfumato기법이 아닐 수 없다. '연기 등이 사라지다, 없어지다'라는 의미의 '스푸마레sfumare'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스푸마토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물의 윤곽을 명확히 드러내는 대신 색의 연쇄에 따른 미묘한 변화를 통해 공간감을 강조하면서 화면에 깊이를 더해 주는 기법이다. 이범근 시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스푸마토 기법이다. (조강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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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반을 지운다』에서/ 2017.7.29.<(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이범근/ 1986년 경북 봉화 출생,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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