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유리멧새/ 연명지

검지 정숙자 2017. 8. 7. 17:39

 

 

     유리멧새

 

    연명지

 

 

  이름이 깨어지면 어쩌나

  유리를 치는 빛에 금이 가면 어쩌나

 

  깃털 바람에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멧새가 숲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소실점 밖으로 사라졌어요

  옛날엔 창자를 끊어 리라를 만들었다지요

  창자로 된 현을 긁어내는 울음소리

  동굴에서 스타카토로 들려왔어요

  호수의 물결을 쓰다듬던 바람이

  어깨를 두드리며 전해주었어요

  그리스 신화에서 물방울 파랑새를 분양한대요

  샘물 곁 무성한 가지로 담장을 넘기 위해

  늙지 않은 나무 한 그루 사러 갔지요

 

  대지의 속살이 흘러넘치는 은하수에는

  반쪽짜리 신들이 흩어놓은 의문 부호가 가득했어요

  그 불친절한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높이 나는 새가 되기로 했어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리멧새의

  맑은 얼굴을 드로잉하며

  자유롭고 생생한 근육의 힘으로

  그들만의 경계를 뚫고

  움직여 나가기로 했어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은 본래 사물과 관계 맺는 자, 사물에 이제껏 없었던 낯선 성질과 의미를 부여하는 자, 사물과의 상투적 관계를 뜻밖의 것으로 전환해 감각의 갱신을 꾀하는 자다. 이 세계가 자아와 일대일 대응하는 모든 관계들의 총체라면, 시를 통해 나와 사물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곧 상투성과 획일성, 일상성에 물든 이 세계를 새롭게 재편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마틴부버가 "나는 너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된다"고 말한 것은 관계가 자아의 성숙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다. 시인은 이 세계의 사물들, 현상들과 끊임없이 관계 맺는 자다. 시 쓰기는 그 관계 맺기의 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특별한 것과 관계 맺어야 특별한 시를 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정 특별한 시는 특별하지 않은 것과 관계 맺을 때 쓰여지는 법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물들, 너무 평범해서 눈길을 끌지 않는 풍경들, 소외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향해 눈을 돌리고 그들과 새롭게 관계 맺기를 모색할 때 좋은 시가 잉태된다. 일상적 풍경을 시적 풍경으로 전환하는 힘은 바로 관계에 대한, 관계 재편에 대한 열망이다. () 언어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 시인일수록 표층언어의 폐쇄성을 심층언어의 확장성으로 바꾸는 데 능숙하다.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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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사과처럼 앉아 있어』에서/ 2015. 7. 24. <(주)천년의시작>펴냄

  * 연명지/ 충북 괴산 출생, 2014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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