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김유섭
그의 얼굴이 몇 개인지 나는 모른다
오랜 동료이지만 언제나 처음보는 얼굴이다
퇴근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그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는 종일 회사로 들어오는 차량의 숫자와
화물의 종류와 무게를 기록했고
나는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감시했다
들뜬 몸짓으로 서둘러
그가 나가버린 사무실은 황량하다
곳곳에 그의 얼굴이 떨어져 있다
내게 커피를 건네던 얼굴
흔들리는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얼굴
점심을 먹으며 유난히 다정하게 웃던 얼굴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의 얼굴이 없다
나는 사무실을 뒤진다
책상 밑 컴컴한 구석에서 일그러진 채 웃고 있는
피 묻은 얼굴을 발견한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얼굴인지 아닌지
거울에 내 피투성이 얼굴들을 비춰보는 밤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자신의 깊은 상처가 타인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과 함께 있기이다. 상처를 입은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때 공동체가 생겨난다. 동시에 이때 하소연의 시가 아니라 보편성의 시가 탄생한다. (김종훈金鍾勳/ 문학평론가,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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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찬란한 봄날』에서/ 2015. 6. 20. <푸른사상>펴냄
* 김유섭/ 경남 남해 출생, 2011년『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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